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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의 가야국,역사연구,종합..함양군,이웃군(함안,고령,산청,남원,거창등)..가야국.개발실태..종합글..
- 작성일
- 2014-02-05 12:56:05
- 작성자
- 오태규
함양군과...가야국의역사..연구...최치원과..상림의..관계...천령봉(함양산)과..관동..삼휴대,마을의역사..연구종합,보고서...|○ 자유게시판
오박사(태규) | | 조회 0 |추천 0 | 2014.02.05. 12:31 http://cafe.daum.net/ohssipeople/IdhT/1388// //
함양군과...가야국,의역사...연구.
최치원,과...상림,의...가치,관계,연구.
천령봉(함양산), 과...관동마을...삼휴동마을, 의...역사연구.
함양군,의...이웃고을(옛날,가야국의..나라들)은?...
옛날...가야국의...자유와..번영을..역사을찾기위하여...
고분분투하는데...
어찌하여?...함양군은?...가야역사,연구..개발..개척에...
눈을감고...모른척..해야하느냐?...
언제까지?...상림숲..가꾸기와...최치원..치적..가꾸기만...
할것인가?...
가야국,역사의...거대한..역사의..파도와..물결이...함양군을..
감싸고...폭풍우 치는데?...
이웃..군,들은..유네스코,세계문화역사..유산을...신청을추진하는데...
언제까지...함양군은?...잠잘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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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국역사종합|★오박사(태규)전용방
오박사(태규) | 조회 4 |추천 0 |2014.02.05. 11:46 http://cafe.daum.net/ohssipeople/IdhD/688// //
가야의 역사 (종합)
2013/03/16 12:16 in -부여 그 외
1∼4세기에는 김해의 가락국이 '큰가야(大加耶)'였고, 5∼6세기에 는 고령의 반로국이
'큰가야(大加耶)'였습니다. 가야사에서 마지막 '큰가야'가 반로국이었기 때문에 고령을 대가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가야의 역사는 전기가야와 후기가야로 나누어 집니다. 400년에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5만의 군대를 파견하여 가야를 공격했던 사건을 중심으로 전기가야와 후기가야로 나눕
니다. 전기 가야에는 김해의 가락국이, 후기가야에는 고령의 대가야가 중심세력이었습니다.
전기가야는 남해안에 인접한 거제(瀆盧國)·김해(狗邪國)·창원(古淳國·卓淳國)·함안(安邪國)·고성
(古 自國)등이 번성하였고, 후기가야는 고령(大加耶)·합천(多羅國)·창녕(不斯國·比斯國)·의령 (爾赦
國)·거창(居烈國)남원(己汶國)·하동(多沙國)·사천(史勿國) 등이 가야문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기원전후의 시기에 김해를 비롯한 창원·마산·함안·고성·사천·진주 등의 지역에서는 소규모의 정치체들이 형성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가야사의 시작이었습니 다. 대개는 3천∼3천5백명 가량의
'소국(小國)'들이었으나, 김해의 구야국(狗邪國)과 함안의 안야국(安邪國)은 2만∼2만5천명 정의
'대국(大國)'이었습니다. 남해안에서 가야사가 시작 된 것은 낙랑군·대방군(樂浪郡 帶方郡)과 같은
선진지역과 바닷길을 통해 교섭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는 3세기경에 대방군에서
일본열도에 이르는 해상교통로를 기록 하고 있습니다. 황해도에서 서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남해에
접어들어 동쪽으로 향하다가, 김해의 구야국에 정박한 다음, 대한해협을 건너 쓰시마(對馬島)를
거쳐 큐슈(九州)에 도착하 는 항로였습니다. 이는 당시 세계 최고의 문명국이었던 한(漢)의 선진문물이 이동하던 경로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남해에 인접해 있던 가야의 소국들은 이러한 선진문물
이동로의 관 문과 같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일찍이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아 들였고, 이를 바탕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김해의 대성동고분군·양동고분군, 창원의 다호리유적,고성의 동외동 패총,
울산의 하대고분군 등에서는 이러한 경로로 수입되었던 중국제 문물들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전기가야 소국들의 발전에는 중국군현과의 외교와 교역이 절대적인 요소로 작용하였습니다.
가 전하는 '포상팔국(浦上八國, 201∼212년)의 난'은 사천· 고성·칠원·마산 등의 가야가 김해의 해상교역권을 빼앗기 위해 가락국을 공격했던 전쟁이 었습니다. 우리는 가야의 건국
신화를 바탕으로 형제관계와 같이 이해하고 있지만, 같은 가야 문화권이라도 이해관계에 따라서는
전쟁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313·314년에 고구려에게 낙랑군과 대방군이 축출되면서
남해안의 가야에 선진문물의 공급 원이 차단되었습니다. 400년에 고구려의 광개토왕은 가야를 공략
하였습니다. 이러한 1세기간의 역사적 변동은 가야사의 중심이 남부의 해안지역에서 북부의 내륙
지역으로 이동하게 하였습니다. 고령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전개된 후기가야는 가야금 12곡명에 대한
새로운 해석, '가라국왕 하지(加羅國王荷知)'의 남제(南齊)와의 외교에 대한 해석, 대가야식 토기와 문물의 확산에 대한 고고학적 해석 등을 통한 대가야사의 복원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5세기 중후엽에
대가야의 가실왕은 우륵에게 가야금 12곡을 작곡시켰습니다. 가 전하는 가야 금 12곡명은 연주곡과 무곡 등으로 구성된 음악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만, 최근에 가야금 12곡명은 서부경남의
가야 여러 나라들의 이름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대가야가 정치적 영향을 미쳤던 산물이 가야금
12곡이었습니다. 고령의 대가야왕은 의령의 사이기국(斯二岐國) 사람 우륵(于勒)을 강제 이주시켜
작곡을 시킬 수 있었고, 가야금 12곡에 서부 경남의 가야들을 포함시키는 정치적 통합체를 추진
하였습니다. 대가야왕은 축제의 마당에 가야왕들을 불러모았고, 가야금 12곡을 연주케 하여 가야의
일체감을 높였습니다. 479년에 대가야왕은 중국의 남제에 외교사절을 파견하여 '輔國將軍·本國王'에 제수되었습니다. 내륙에 위치한 대가야(고령)의 사절단이 중국의 양자강에 이르려면 먼저 남해로
나와야 합니다. 고령에서 남 해로 나오는 길은 낙동강과 섬진강이 있지만, 당시의 낙동강 하류역은
신라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대가야에서 섬진강 하구(하동)에 도달하려면 고령→합천→거창→함양→남원 (운봉)의 육로와 남원→곡성→구례→하동의 섬진강을 경유하였을 것입니다. 5세기 후반의
대가야 왕은 이러한 지역에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가야 사절단은 중국의 남제에 도 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물적증거가 서부 경남지역에 대가야식 토기와 문물이 확산되는
현상과 고령 지산동고분군의 내용입니다. 대가야식 토기와 금동제 위세품등이 서부경남 일대로 확산되는 과정은 경제교역권(5C중엽)→간접지배권(5C후엽)→직접 지배권(6C 초)의 단계로 나누어
집니다. 고령의 지산동44호분은 중앙의 주인공을 방사식으로 둘러싸듯 이 35개의 돌방이 만들어졌고 그 안에는 무려 100인 이상을 강제로 죽여 순장되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6세기의 대가야는
고대국가의 출발점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6세기 전반부터 가야는 신라와 백제의 침입에
휘말리게 됩니다. 에는 당시의 사정이 자세하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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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역사을...찾자...연합회..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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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뉴시스】김재욱 기자 = 가야문화권지역발전 시장군수협의회(의장 곽용환 고령군수)는 25일부터 27일까지 전북 남원 켄싱턴리조트에서 문화관광해설사 및 관광부서 공무원 합동 워크숍을 개최한다.
협의회 소속 5개 시도(대구, 경남, 경북, 전남, 전북), 14개 시군(광양, 남원, 순천시, 거창, 고령, 달성, 산청, 성주, 의령, 장수, 창녕, 하동, 함양, 합천군)의 90여 명이 참석한다.
워크숍은 인적네트워크 구축과 가야문화권 보존 및 효율적 개발을 위한 관광개발방향을 탐색하고 체계적인 문화 관광인프라 구축과 관광안내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추진됐다.
‘대가야문화권의 전통과 미래’ ‘Fun한 의사소통’ ‘백두대간 일대 가야문화유적’이란 주제의 특강과 남원 운봉리 고분, 장수군 동촌리 고분군, 삼봉리 고분군 일대, 함양군 백천리 고분군 일대, 하동군의 고소성 일대 등 가야문화유적지를 직접 탐방하는 현장교육으로 진행된다.
곽용환 협의회 의장은 “가야문화권은 520년간 찬란한 역사를 간직하고 우리나라 고대국가의 한 축을 형성했다”면서 “가야문화권 자치단체간 긴밀한 네트워크 구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교류를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jukim@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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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문화권에 소재한 경남·북과 전남·북을 비롯한 전국 15개 시·군 단체장이 함안군청 대회의실에서‘ 제12차 가야문화권 지역발전 시장·군수 협의회’를 개최하고 가야문화권 개발과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정부에 건의키로 했다.
17일 군에 따르면 함안 말이산 고분군 답사와 함안박물관을 방문하여 우수한 아라가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회의는 경남발전연구원 하승철 실장의 ‘함안군 아라가야문화 소개’에 이어 2014년 협의회 회의 개최 및 장소 선정, 2014년 합동 워크샵 및 공무원체육대회 개최 등 논의했다.
특히 가야문화권 개발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자지체간 연계협력 공모사업 신청 등 4개 안건을 상정, 의결했다.
이날 의결된 ‘가야문화권 개발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은 가야문화권의 체계적인 정비와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고 가야문화권 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한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으로 10명 이상의 국회의원 발의로 추진하고 11월중 국회에서 공청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또한 고유한 ‘가야’ 역사·문화와 자원을 활용해 특색 있는 연계네트 워크를 구축하고 가야 역사·문화 실체 규명과 장기적 발전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가칭 ‘가야문화권역 역사·관광벨트 조성사업’을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 지자체연계사업으로 공모를 신청하기로 했다.
가야문화권 지역발전 시장·군수 협의회는 가야문화권의 5개 시·도 15개 시·군(경북 고령군, 성주군, 대구 달성군, 경남 거창군, 산청군, 의령군, 창녕군, 하동군, 함안군, 함양군, 합천군, 전북 남원시, 장수군, 전남 광양시, 순천시)으로서 2005년 6월 구성됐다.
함안군은 지난해 추가 가입, 협의회에서는 2005년 11월 가야문화권 혁신 대 토론회를 시작으로 2008년부터 매년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한편 2010년 12월 가야 문화권 특정지역 지정과 연 2회의 정기 협의회, 합동 워크샵, 체육대회 등을 실시하여‘가야’의 공통된 역사문화 인식을 공유하며 상호 협력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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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국의..함양군..가야국은?..어떤..나라...였나?
왜?...신라,에..병합되어...신라,의...식민지가..돼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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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까지의 가야연맹의 중심은 구야국입니다. 나중에 금관가야/임라가라라고도 불리고, 김해에 위치했습니다. 2세기후반부터 자연스럽게 교역창구를 단일화하여 구야국이 대표하게 되었던 것 같고, 이와 같은 위상의 변화를, 당시 구야국의 지배층의 무덤군이라 짐작되는 김해 대성동 고분군의 유물 수준이랑 봉분규모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번 답사에서는 김해가 넘 멀리 떨어져 있어 돌아볼 수 없네요 -.-;; 이때의 번성했던 구야국 등등 전기 가야연맹, 혹은 구야국 주위의 낙동강하류 지역의 나라들이 번영했던 이유는, 공통적으로, 교역상의 천혜의 요지에 위치해있다는 점, 그리고, 일찍부터 그 일대에서 꽤 풍부한 철산지가 개발되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큰 강의 하구에 위치하면 일단 내륙으로의 교역에 단연 유리하고, 또한 김해일대는 마침 일본과도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면 나라간 교역에 있어서도, 특히 낙랑, 왜, 신라 등 교역대상국과 해운으로 다 연결이 되는 독보적인 장점을 십분 활용할 수 있었던 거죠. 상업으로 축적된 국력과 철기로 대표되는 군사력이 아마 이 시대의 가야연맹의 특징이었겠네요^^;;
이때의 주요 가야연맹국의 구성원으로는, 구야국/반파국(김해), 독로국(부산시 동래구), 미오야마국/임나국(창원시), 고자미동국/고사포국(고성군고성읍), 안야국(함안군가야읍), 접도국/칠포국(함안군칠원면), 미리미동국(밀양시), 반로국/반파국(고령군개진면), 감로국/감문국(김천시 개령면), 주조마국(함양군함양읍), 고순시국(산청군단성면) 정도가 언급되네요^^;;
가야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서는 고분군 발굴에서 나옵니다. 이쯤해서 나중의 공부를 위해 몇 곳의 중요한 고분군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먼저 부산시 동래구에는 복천동고분군, 김해시에는 앞서 언급된 대성동고분군/예안리고분군/구산동고분군/칠산동고분군/양동고분군, 창원시에는 다호리고분군/가음정동고분군, 거제시의 아주동고분군, 고성군의 송학동고분군/내산리고분군, 고령군의 지산동고분군/고아동벽화고분, 함안군의 도항리고분군/말산리고분군, 성주군의 성산동고분군, 의령군의 죽전리고분군/중동리고분군/운곡리고분군, 창녕군의 교동고분군/송현동고분군/계성고분군, 진주시의 옥봉고분군, 산청군의 생초고분군, 합천군의 옥전고분군/삼가고분군/개봉고분군, 함양군의 백천리고분군, 구미시의 낙산동고분군, 상주시의 병풍산고분군/함창오봉산고분군, 경산시의 임당동고분군/조영동고분군, 대구시의 불로동고분군 등등... 헥헥헥 @.@;; 이 중에는 전형적인 가야 지배집단의 고분군임에 틀림없는 곳도 있고, 지역의 수장급 고분군도 있고, 규모나 부장품 등, 꽤 다양한 듯합니다^^;;
당시 동아시아 최강이었던 고구려의 철기병앞에, 군사력으로나 국력으로나 이모저모로 볼 때 가야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렇다할 항전기록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구야국, 가야연맹의 맹주국은 완패했습니다. 그 결과는 전체 가야연맹에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구야국은 치명적인 손실을 입고, 나중에 신라에 병합될 때까지 다시는 전성기의 국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전기의 가야 연맹은 와해되는 수순을 밟게 됩니다. 실제로 대성동고분군의 연대를 살펴보면, 5세기에 이르기까지 화려하고 다양했던 부장품들이, 그 이후 뚜렷하게 소략한 규모와 화려함을 보이며 단절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지배 세력이 힘을 잃고 그 지역을 떠났다는 얘기도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로 인해 파생된 또 한가지 변화, 이 지역의 기술인/지배인 집단이 대규모로 일본 혹은 낙동강 서안 내륙지방으로 이주하면서 그 지역의 문화적/기술적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일본에는 본격적인 고대국가의 형성에 이르게 되는 계기가 된 것도 같고, 유물을 보더라도 이 시기 이후에 집중적으로 가야식 토기 및 부장품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낙동강 서안 쪽에 전수된 문화/기술을 바탕으로 대가야를 중심으로 한 후기 가야 연맹이 발전하게 된 것도 같습니다.
철기문명이 특징인 가야인지라, 후기로 넘어가면서도 주도권을 쥔 나라에게는 어김없이 철광산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령 인근 야로면의 철광산인데, 이 시기부터 갑자기 유물이 다양/화려해지고, 봉분도 거대해지는 대가야 영역의 고령쪽 고분군의 양상을 보면, 어쩌면 철기 문명의 기술인/지배층 일부가 이쪽으로 온 걸까요 ?? 이처럼 구야국을 대신하여 새로운 맹주국이 등장하여 다시 연맹체가 활력을 찾았는데, 이 시기에 주요한 나라는 대략, 과거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남가라국/금관국/금관가야 (김해시), 예나 지금이나 만만찮은 제2인자 안라국/아라가야(함안군가야읍), 탁순국(김해시), 탁기탄국/마수비(창녕군영산면), 산반하국/사팔혜(합천군초계면), 사이기국/이열비(의령군부림면), 임례국(의령군의령읍), 가라국/대가야(고령군고령읍), 다라국(합천군합천읍), 거열(거창군거창읍), 졸마국(함양군함양읍), 걸손국(산청군단성면), 자타국/자탄(진주시), 사물(사천시사천읍), 고차국/고자국(고성군고성읍), 대사국(하동군고전면), 상하다리/달이(여수시,돌산읍), 모루/만해/물혜(광양시광양읍), 사타(순천시), 기문/상기물(임실군임실읍, 장수군변암면), 등등등... 참 많습니다.^^;; 겨우겨우 이름이 남은 나라이름이라도 이렇게 가능하면 많이 외워둡시다!!
고령의 대가야는, 이 일대의 농업생산력과 인근의 야로철광을 배경으로 가야연맹에서 주도권을 행사하였던 같고, 479년에는 중국과 수교(이를테면 보국장군본국왕), 481년에는 신라에 원군을 보내기도 한 사실이 사서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522년부터 562까지 가야연맹은 혼란스러운 시기를 맞이합니다. 대가야와 신라간의 결혼동맹도 여의치 못했고, 고령의 대가야와 함안의 아라가야간의 주도권다툼으로 내부의 결속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었고, 백제의 설득에 백제의 영향권에 들었다가, 554년 관산성전투의 패배로 결정적인 타격을 받아 8년을 못 버티고 대가야는 신라에 복속되었습니다. 이렇게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신라에 복속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대개 네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먼저 내부적으로 각각의 나라간의 견제가 심해 외부의 위협에 대해 일사분란한 대처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 그 때문에 중앙집권적인 통일국가의 등장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 4세기말의 고구려의 정벌, 가야가 주변국가에 대해 가졌던 두가지 강점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은 정세의 변화, 즉 왜국과 신라에서 철생산이 이뤄지던가, 가야를 통하지 않고 교역이 이뤄지기 시작했던가 하는 변화, 이런 저런 이유로 오백년 역사의 가야는 몰락했지만, 아직도 고토에 있는 거대한 고분들이 남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가야의 문화가 결코 미개해서 몰락한 것은 아닙니다. 신라의 삼국통일의 주축이었던 김유신, 강수가 금관가야출신인 것을 봐도 그렇고, 우륵이 대가야 출신인 것을 봐도 짐작할 수 있죠. 당시는 중앙집권적인 체제가 일찍 완성되고 국가의 자원이 효율적으로 집중되었던 나라가 우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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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기념물 제171호 함양백천리고분군 (咸陽白川里古墳群) 경상남도/ 문화재및(문화재청자료기초)
2013/12/20 16:17
http://blog.naver.com/camlhd2/110181806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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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고분군
수량/면적 20,727㎡
지정(등록)일 1997.12.31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산11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함양군
관리자(관리단체) 함양군
상 세 문 의 경상남도 함양군 문화관광과 055-960-5162
함양백천리고분군에 대한 설명입니다.
백천리 척지마을 남계천 옆의 낮은 구릉지대에 분포한 가야시대의 무덤들이다.
발견된 무덤의 수는 무덤 5기와 그 주변에 있는 작은 구덩식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묘) 21기이다. 고분은 둥근 봉분이 남아 있고 묘제는 네모꼴이다. 옆벽은 모두 냇돌로 쌓았고 주실의 동쪽이나 서쪽에 반드시 구덩식돌덧널로 된 부곽을 나란히 배치하여 주실과 부곽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다곽묘이다. 고분 주위에 퍼져 있는 작은 구덩식돌덧널무덤은 크게 파괴되어 완전하게 모습이 남아 있는 예는 하나도 없으며 역시 냇돌로 쌓은 일반적인 형태이다. 유물은 토기류, 철기류, 장신구류 등 200여 점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이 토기이다. 연대는 대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로 추정한다.
함양 백천리무덤들은 지금까지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가야소국 하나가 이 지역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며 이 지방 무덤과 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경상남도기념물제171호함양백천리고분군(咸陽白川里古墳群)
[출처] 경상남도 기념물 제171호 함양백천리고분군 (咸陽白川里古墳群) |작성자 백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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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역사...가야할길...운명의길...진실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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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은..늦었지만..가야시대의역사..진실의역사는..찾아야한다..이것이..함양군의운명이다..진실이기에..
글쓴이 : 오태규 Lastupdate : 2014-02-05 01:19, Regist : 2014-02-05, Hit : 2
함양군의..진실한역사..가야시대의..역사을..찾아야한다...이길이...함양군이..가야할..운명의..길이고..진실한길이다...함양군의...상림?...최치원의역사는?...함양군...가야시대역사의..단편에...불과하다..
이것이...함양군의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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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양군의,역사의진실..가야시대,역사을찾아야한다..늦었지만?..이제라도,진실을찾아야한다!..
번호
374
작성자
오태규
작성일
201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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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의..역사의진실..가야시대,역사을찾아야한다..늦었지만?..진실과..진리의길에는..(역사에는)..늦다는,말이..통하지않는다..함양군은..이제는..잃어버린..진실의역사..가야시대을..연구하고찾아야한다..함양군은..군청안에..가야역사..연구조직팀,을만들어서..함양군의..가야역사..을..처음부터찾아야한다...함양군의.가야시대..무덤군조사..함양군..가야시대문헌조사..함양군..가야유물조사..함양군,가야시대..유물발굴..조사대학(부산대학.인제대학.등등)..가야역사전문가..초빙..조사.연구..상담..자문..하여..함양군의..가야역사..
기초조사을...실시해야할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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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이..함양군의..상림숲과..최치원의..1인의개인의,역사..찾기에..20여년의세월을..허송하는동안...함양...이웃의..군들은..가야시대의..역사의커다란..진실을찾아서..거대한업적을..찾았고..남기게되었고..국가에서도..인정받았다..
함양군이...역사찾기..방향을...잘못..잡은것이다...
함양군도...이제라도..늦었지만..역사의..진실의길은..찾아야된다
이길이...함양군의 운명의길이고..진실의길이고..이제라도..찾아야되고..가야할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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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대형사업 진단] 함안 가야문화권 특정지역 개발
말이산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아라가야’ 영광 재현
기사입력 : 2014-02-04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함안 말이산고분군./함안군 제공/
함안 말이산고분군 전경.
함안 법수 자연생태 늪.
함안군은 지난 2년간의 노력 끝에 지난해 12월 11일 국토교통부로부터 ‘아라가야’가 ‘가야문화권 특정지역’에 추가로 포함됨에 따라 오는 2019년까지 역사문화자원 복원 등 3개 분야 5개 사업에 720억 원 규모의 국책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군은 2010년 12월 24일 대가야권역을 중심으로 지정된 가야문화권 특정지역에 포함되기 위해 기획감사실에 담당부서를 지정하고, 2012년 3월 23일 ‘가야문화권 시장·군수협의회’에도 가입했다.
또 2012년 7월 특정지역 변경 지정안을 수립해 국토교통부와 경상북도, 대구시 등을 10여 차례 방문한 것을 비롯 문화관광부, 농림부, 산림청 등 8개 중앙부처와 수차례 협의를 통해 함안군을 ’가야문화권 특정지역’에 포함하는 성과를 거뒀다.
‘가야문화권 특정지역’ 개발은 지난해 12월 11일 함안 말이산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와 연계 추진해 1500년 전 찬란했던 아라가야 역사문화를 재창조하는 기회로 야심차게 추진할 계획이다.
▲사업 개요
‘가야문화권 특정지역’ 개발 사업은 △역사·문화자원 복원 및 개발정비사업으로 ‘말이산고분군 정비사업’에 439여억 원 △지역관광자원정비 및 조성사업으로 ‘법수 자연생태늪 정비사업’과 ‘여항산 자연체험단지 조성사업’에 139억여 원 △도로·교통 기반시설사업에 ‘여항산 자연체험로 연결도로’와 ‘아라가야 역사도로’ 조성사업에 142억여 원을 투입하는 등(3개 분야 5개 사업에 720억여 원) 가야문화권 특정지역 국책 사업(2019년까지)을 추진한다.
▲사업별 추진 계획
군은 ‘말이산고분군 정비사업’으로 함안박물관을 새롭게 정비한다. 고려시대 산성으로 추정되는 성산산성에서 출토한 각종 목간과 말이산고분군에서 출토된 말갑옷, 미늘쇠 등 우수한 유물을 박물관에 전시하고, 고분군과 성산산성 탐방로 정비와 아직도 미제로 남아 있는 아라가야 왕조 계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가야제국(伽倻諸國)의 역사적 의미를 복원함으로써 아라가야(阿羅伽倻)의 영광을 재현할 계획이다.
‘법수 자연생태늪 조성사업’은 천연기념물인 대평늪과 멸종위기의 가시연꽃 자생지로 유명한 질날늪을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700년 전 아라홍련과 연계해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고, 남강과 둑방길, 팜스테이마을, 현재 추진 중인 창조적 마을만들기사업 등과 연계해 1일 관광·체험지구로 조성해 도시민들에게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하는 등 지역주민들의 소득증대에 이바지하게 된다.
또 인구 110만 명의 창원시와 접하고 있어 도시민 웰빙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는 여항산 일대는 지리적 여건을 활용해 ‘여항산 자연체험단지 조성사업’을 추진해 웰빙과 친환경 캠핑문화지대를 조성하고, 천혜의 자연자원을 활용해 여항산 전체를 자연체험 단지화할 계획이다.
‘여항산 자연체험로 연결도로’ 개설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여항산 둘레길 체험 관광객의 편의를 도모한다. 임도와 겸용으로 사용하는 일부 구간은 산불예방 및 산림보호를 위한 순찰 및 순환도로로 연결 개설해 긴급사항 발생 시 출동 차량들이 7.7km를 돌아나와야 하는 불편함을 개선하는 등 자연자원 보호와 관광객 유치의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게 개발한다.
‘아라가야 역사도로’는 산인면 모곡과 칠원면 유원을 연결하는 도로로 군청 소재지인 가야권역과 역사 문화자원의 칠원권역을 최단 거리로 연결한다. 칠원지역민들의 군청 방문 시 내서읍으로 우회하는 이동 불편을 해소하고, 말이산고분군과 고려동 유적지, 주세붕선생 생가를 비롯 창녕·함안보 등 낙동강 친수공간을 연결하는 역사 탐방 도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와 연계해 ‘함안 말이산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반을 마련한다.
말이산고분군은 가야읍에 있는 아라가야 왕과 지배층의 묘역으로 2011년 7월 29일 사적 제515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지정 면적은 52만5221㎡이며, 남북 길이 2.1km, 동서 길이 최대 510m에 달한다. 남북으로 뻗어있는 말이산 주능선과 서쪽으로 낮아지는 작은 능선을 따라 대형 봉분이 분포돼 있으며, 고분 숫자는 직경 20m 이상의 대형 봉분 50여 기와 함께 현재까지 발굴된 고분 224기를 포함해 1000여 기로 추정되고 있다. 출토된 유물은 아라가야 왕들을 상징하는 각종 무기류, 말 갖춤새, 장신구 등이다.
특히 1992년 마갑총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완전하게 발굴된 말 갑옷(馬甲)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묘사된 것과 같은 말 갖춤새가 완벽한 상태로 출토돼 아라가야가 철을 배경으로 강력한 고대왕국을 형성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군은 독창적이고 가치 있는 가야유산을 경남의 대표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기 위해 2012년부터 ‘가야유적 세계유산 등재 타당성 연구 용역’을 시작으로 세계유산 목록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문화재청 실사를 거쳐 8월 27일 문화재청에서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대상지로 결정한데 이어 12월 11일에는 유네스코 본부에서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키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군은 말이산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최종 등재를 위해 ‘가야문화권 특정지역’ 개발사업과 연계해 추진할 계획이다.
▲향후 추진계획
군은 본격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사업별 관련부서를 중심으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실시설계를 한 후 광특회계 등 국·도비 우선 배정에 노력할 계획이다.
아울러 가야권역에 위치한 5개 시·도 15개 시장·군수로 구성된 ‘가야문화권 시장·군수 협의회’를 활성화하고, 함안군이 가야권지역의 중심적 역할을 할 계획이다.
또 가야시대를 대표하는 함안 말이산고분군을 ‘가야문화권 특정지역’ 개발사업과 연계 추진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입증하고 2016년 목표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계획이다.
▲기대효과
함안군이 ‘가야문화권 특정지역’에 지정됨에 따라 서쪽으로는 대가야 권역과 동쪽으로는 금관가야 권역을 이어주는 동서화합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지역발전 가속화는 물론 정부에서 추진하는 지역균형발전 개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아라가야시대 대표 유적인 ‘함안 말이산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성호 기자 baesh@knnews.co.kr
총 232 개 , 쪽번호 1/16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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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은..늦었지만..가야시대의역사..진실의역사는..찾아야한다..이것이..함양군의운명이다..진실이기에.. 오태규 14.02.05 2 인증됨
231 하루 2~3시간으로 용돈 두둑히 챙겨가세요 이제욱 14.02.04 5 인증됨
230 함양군의..최치원사당..건립에..대한..의견,과..함양,관광객20만명추가유치..방법제안서. 오태규 14.01.31 26 인증됨
229 함양군역사..와....최치원의,역사...재검토하고..새롭게연구해야한다. 오태규 14.01.29 30 인증됨
228 1월27일,함양군,삼휴대,기념비세우고,물레방아축제에,3성씨,참여시키자.기고문에대하여.. 오태규 14.01.29 34 인증됨
227 100배빠른 영어 공식. 강은미 14.01.08 62 인증됨
226 내병은 내가고치고 내가족은 내가지키자. 강은미 14.01.08 67 인증됨
225 간청소~간청원. 강은미 14.01.08 57 인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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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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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내용
제목함양군에,이번에,만드는,고운,최치원,사당에..함양고유3성씨,위페,같이모시면..3성씨,후손20만명이..함양관광객,추가된다.
번호
373
작성자
오태규
작성일
2014.01.31
조회수
22
함양군에서..계획하고있는..고운,최치운,사당건립시에..최치운사당에..함양고유3성씨(함양박씨..오씨,여씨),위패을같이모시면..3성씨후손들..20만명이..함양관광객으로..추가된다..
함양의고유..성씨들이기에..타성시들보다도..함양군에..애향심이..지극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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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최치원..의역사을...현대사회에서..재조명,하여보았을때...여러사람의..위패을모시는것이..경제적이고,,효율적이다..그,실예을..보라..|★오박사(태규)전용방
오박사(태규) | 조회 12 |추천 0 |2014.01.31. 09:07 http://cafe.daum.net/ohssipeople/IdhD/679
고운,최치원..의,역사을..현대사회에서..재조명..해보았을때..
함양군은?...어떻게..함양의,역사의전당을 만들어야 하는가?..
함양군도..이제는..함양의역사..을 재조명해보고..역사의식에..잘못이 없는지?..제검토을해야할,때인것으로 본다.
함양군은..신라말엽에..유학자이고..문장가이고..역사의기록에..남아있는..극소수의사람중에..한분이고..한국전국,각지에서..자기향토에서..기록을남기었다고..자랑하는인물..최치원선생에..대하여..다시한번..현대적인..역사의관점에서..조명하고..재검토을해야한다고본다.
그,이유는?..다음과같다.
함양군이..현대의,지금까지..함양군의 절대적인,권위자..공로자..인물..로, 인정하여..함양군의..고유제사에..유일한사람으로..신(神)격으로..모시고..매년 제사을 지내오는데..과연,이것이..역사적으로,볼때에..역사기록으로..볼때에...합리적인가?..옳은일인가?...반성해볼때이다.
최치원은?..신라말엽에..유명한사람이지만..함양군태수로..오래봉직하지도않았고..전국을 유람하며..방랑인,생활을한,사람이였다.
최치원은?..한국,전국에(해운대..정읍태수등)..여러지방에서..자기고향을..거쳐간..사람으로..전국각지에서..유명세..가있다.
사대사상이..사회전체을..지배하던시절..신라..고려..조선시대에는...당나라..명나라..등의..중국에서..벼슬하거나..이름을남기면..그,시대에..일약..유명인이..되었던시절에..살았던..인물이..최치원선생이다.
함양에서는..함양의 상림숲을..만들었다하나?..확실한,역사적..증거도..부족하고..
설형..옛날..함양에서..치수사업으로..상림숲을 만들어..농민들의..농사짓는데..도움을 주었다하나?...함양군..2000년간의,역사에...함양군을..지켜오고..살아온...수많은태수..수많은관료..수백만명의...함양군..농민들..군민들...대다수의..삶과..공적에..비교될수있겠는가?...
더욱이..현대는..민주주의사회로..국민이..주인이고..군(郡)에서는..군민(郡民)이.주인이고..군수(태수)는..군민이..선거로뽑고..군수는..일정기간..봉사하다..떠난다...이런,민주사회에 살고있는...우리가..사대사상의..아부성,잔재을..현재에도..억지로..과대하게..미화시켜..우상화하여..군민(郡民)들의..혈세을..드려야하겠는가?
함양군의..관광발전..을,위해서라면..경제적이고..실용성있는..다른방법도..많을것이다.
최치원의...단독,사당건립만이..관광객이...많이..찾아온다는..보장은없다.
예을들면...전북.정읍의..최치원사당에는..여러분들의..유학자들을..함께..위패을모시고있다.
전국,여러곳의..최치원,사당에는..많은,유학자들..의병들의..비석..위패,등이..함께..모셔져있는것이..현실이다.
(아래,자료참조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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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곳곳의..최치원,사당에..그,지방의..역사의인물들이..위패와..비석으로..
기념물이..모셔져있는것이..현실이고..경제적이기에..
함양군에서도...1000년간의,역사을지닌..함양고유3성씨의..위패와..기념비을..이번에..건립되는..최치원사당에..함께..세워준다면?
함양군은 경제적인방법으로..3성씨의..후손들..전국에..20만명의관광객을..더확보할수있읍니다.
함양박씨..12만명..함양오씨..3만명..함양여씨..3만명..의..함양고유3성씨후손들은?.
근본적으로..함양을..고향으로..생각하고있기에..함양향토에,대한..애정도..깊고..
대단합니다.
그러기에..이번기회에..함양군에서..함양고유3성씨..을.인정해주고...역사증표..기념비,을..만들어준다면..
고유3성씨는..능력과..잠재력..경제력이..무한하기에..관광객..뿐만아니라..함양군의발전에..크게...도움을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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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민들도..이제는..현대의..정서에..어울리게..함양군의..땅과.대지을..사랑하며..땀흘려서..땅을개간하고..일하였던..함양군의..수많은..무명의..군민들..농민들..
함양에서..나라,을위하여..군대에..가고..몸을받쳤던..영령들..
함양의..땅에서..일생을바쳐서..노력하고..헌신하고..봉사하고..대대손손..대을이어서..살아온..함양의..고유의..옛날사람들을..추모하고...기리는것이...
왕이..지배하고..사대사상이..지배하던..봉건사회,가..아닌...현대에 살고있는...
우리시대에..우리가..지금..찾아야하고..추모해야할...역사의진실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함양군에서..최치원의..고유제..만,지내고...최치원의역사관..만...치장하고...만드는것은?...
옳바른,일이아니다..
이제는..함양군에서. 일천년간,이상을..대대로 살아오면서..함양의..땅을개간하며..나라에..충성하고..봉사해온..함양의고유의..3성씨들도..
옛날의...함양의 실존역사의 인물로..새롭게..역사을발굴하고..함양의..고유제..제사에도..모셔야된다..고,사료된다.
함양군은...무엇보다도...잃어버린...함양의,가야역사...500여년간(서기560년이전역사)을 찾는것이..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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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관계로...최치원..이란.. 인물의..역사의진실을...함양군민들...모두가...알고지내어야한다...최치원은?..산라말엽에..유명한,학자이고..문장가이지만..함양군의...유일신(神)..이아니다.
문장을잘하는...문학가였고...관료였고...방랑아였다...함양군을 구한..영웅도아니요...함양군에서..땅일구며...산사람도 아니였다...
함양군에..태수로..잠깐..쉬었다간..몇년간..봉직의..태수였을뿐이다
오박사(태규) | | 조회 0 |추천 0 | 2014.02.05. 12:31 http://cafe.daum.net/ohssipeople/IdhT/1388// //
함양군과...가야국,의역사...연구.
최치원,과...상림,의...가치,관계,연구.
천령봉(함양산), 과...관동마을...삼휴동마을, 의...역사연구.
함양군,의...이웃고을(옛날,가야국의..나라들)은?...
옛날...가야국의...자유와..번영을..역사을찾기위하여...
고분분투하는데...
어찌하여?...함양군은?...가야역사,연구..개발..개척에...
눈을감고...모른척..해야하느냐?...
언제까지?...상림숲..가꾸기와...최치원..치적..가꾸기만...
할것인가?...
가야국,역사의...거대한..역사의..파도와..물결이...함양군을..
감싸고...폭풍우 치는데?...
이웃..군,들은..유네스코,세계문화역사..유산을...신청을추진하는데...
언제까지...함양군은?...잠잘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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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국역사종합|★오박사(태규)전용방
오박사(태규) | 조회 4 |추천 0 |2014.02.05. 11:46 http://cafe.daum.net/ohssipeople/IdhD/688// //
가야의 역사 (종합)
2013/03/16 12:16 in -부여 그 외
1∼4세기에는 김해의 가락국이 '큰가야(大加耶)'였고, 5∼6세기에 는 고령의 반로국이
'큰가야(大加耶)'였습니다. 가야사에서 마지막 '큰가야'가 반로국이었기 때문에 고령을 대가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가야의 역사는 전기가야와 후기가야로 나누어 집니다. 400년에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5만의 군대를 파견하여 가야를 공격했던 사건을 중심으로 전기가야와 후기가야로 나눕
니다. 전기 가야에는 김해의 가락국이, 후기가야에는 고령의 대가야가 중심세력이었습니다.
전기가야는 남해안에 인접한 거제(瀆盧國)·김해(狗邪國)·창원(古淳國·卓淳國)·함안(安邪國)·고성
(古 自國)등이 번성하였고, 후기가야는 고령(大加耶)·합천(多羅國)·창녕(不斯國·比斯國)·의령 (爾赦
國)·거창(居烈國)남원(己汶國)·하동(多沙國)·사천(史勿國) 등이 가야문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기원전후의 시기에 김해를 비롯한 창원·마산·함안·고성·사천·진주 등의 지역에서는 소규모의 정치체들이 형성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가야사의 시작이었습니 다. 대개는 3천∼3천5백명 가량의
'소국(小國)'들이었으나, 김해의 구야국(狗邪國)과 함안의 안야국(安邪國)은 2만∼2만5천명 정의
'대국(大國)'이었습니다. 남해안에서 가야사가 시작 된 것은 낙랑군·대방군(樂浪郡 帶方郡)과 같은
선진지역과 바닷길을 통해 교섭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는 3세기경에 대방군에서
일본열도에 이르는 해상교통로를 기록 하고 있습니다. 황해도에서 서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남해에
접어들어 동쪽으로 향하다가, 김해의 구야국에 정박한 다음, 대한해협을 건너 쓰시마(對馬島)를
거쳐 큐슈(九州)에 도착하 는 항로였습니다. 이는 당시 세계 최고의 문명국이었던 한(漢)의 선진문물이 이동하던 경로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남해에 인접해 있던 가야의 소국들은 이러한 선진문물
이동로의 관 문과 같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일찍이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아 들였고, 이를 바탕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김해의 대성동고분군·양동고분군, 창원의 다호리유적,고성의 동외동 패총,
울산의 하대고분군 등에서는 이러한 경로로 수입되었던 중국제 문물들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전기가야 소국들의 발전에는 중국군현과의 외교와 교역이 절대적인 요소로 작용하였습니다.
가 전하는 '포상팔국(浦上八國, 201∼212년)의 난'은 사천· 고성·칠원·마산 등의 가야가 김해의 해상교역권을 빼앗기 위해 가락국을 공격했던 전쟁이 었습니다. 우리는 가야의 건국
신화를 바탕으로 형제관계와 같이 이해하고 있지만, 같은 가야 문화권이라도 이해관계에 따라서는
전쟁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313·314년에 고구려에게 낙랑군과 대방군이 축출되면서
남해안의 가야에 선진문물의 공급 원이 차단되었습니다. 400년에 고구려의 광개토왕은 가야를 공략
하였습니다. 이러한 1세기간의 역사적 변동은 가야사의 중심이 남부의 해안지역에서 북부의 내륙
지역으로 이동하게 하였습니다. 고령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전개된 후기가야는 가야금 12곡명에 대한
새로운 해석, '가라국왕 하지(加羅國王荷知)'의 남제(南齊)와의 외교에 대한 해석, 대가야식 토기와 문물의 확산에 대한 고고학적 해석 등을 통한 대가야사의 복원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5세기 중후엽에
대가야의 가실왕은 우륵에게 가야금 12곡을 작곡시켰습니다. 가 전하는 가야 금 12곡명은 연주곡과 무곡 등으로 구성된 음악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만, 최근에 가야금 12곡명은 서부경남의
가야 여러 나라들의 이름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대가야가 정치적 영향을 미쳤던 산물이 가야금
12곡이었습니다. 고령의 대가야왕은 의령의 사이기국(斯二岐國) 사람 우륵(于勒)을 강제 이주시켜
작곡을 시킬 수 있었고, 가야금 12곡에 서부 경남의 가야들을 포함시키는 정치적 통합체를 추진
하였습니다. 대가야왕은 축제의 마당에 가야왕들을 불러모았고, 가야금 12곡을 연주케 하여 가야의
일체감을 높였습니다. 479년에 대가야왕은 중국의 남제에 외교사절을 파견하여 '輔國將軍·本國王'에 제수되었습니다. 내륙에 위치한 대가야(고령)의 사절단이 중국의 양자강에 이르려면 먼저 남해로
나와야 합니다. 고령에서 남 해로 나오는 길은 낙동강과 섬진강이 있지만, 당시의 낙동강 하류역은
신라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대가야에서 섬진강 하구(하동)에 도달하려면 고령→합천→거창→함양→남원 (운봉)의 육로와 남원→곡성→구례→하동의 섬진강을 경유하였을 것입니다. 5세기 후반의
대가야 왕은 이러한 지역에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가야 사절단은 중국의 남제에 도 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물적증거가 서부 경남지역에 대가야식 토기와 문물이 확산되는
현상과 고령 지산동고분군의 내용입니다. 대가야식 토기와 금동제 위세품등이 서부경남 일대로 확산되는 과정은 경제교역권(5C중엽)→간접지배권(5C후엽)→직접 지배권(6C 초)의 단계로 나누어
집니다. 고령의 지산동44호분은 중앙의 주인공을 방사식으로 둘러싸듯 이 35개의 돌방이 만들어졌고 그 안에는 무려 100인 이상을 강제로 죽여 순장되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6세기의 대가야는
고대국가의 출발점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6세기 전반부터 가야는 신라와 백제의 침입에
휘말리게 됩니다. 에는 당시의 사정이 자세하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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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역사을...찾자...연합회..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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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뉴시스】김재욱 기자 = 가야문화권지역발전 시장군수협의회(의장 곽용환 고령군수)는 25일부터 27일까지 전북 남원 켄싱턴리조트에서 문화관광해설사 및 관광부서 공무원 합동 워크숍을 개최한다.
협의회 소속 5개 시도(대구, 경남, 경북, 전남, 전북), 14개 시군(광양, 남원, 순천시, 거창, 고령, 달성, 산청, 성주, 의령, 장수, 창녕, 하동, 함양, 합천군)의 90여 명이 참석한다.
워크숍은 인적네트워크 구축과 가야문화권 보존 및 효율적 개발을 위한 관광개발방향을 탐색하고 체계적인 문화 관광인프라 구축과 관광안내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추진됐다.
‘대가야문화권의 전통과 미래’ ‘Fun한 의사소통’ ‘백두대간 일대 가야문화유적’이란 주제의 특강과 남원 운봉리 고분, 장수군 동촌리 고분군, 삼봉리 고분군 일대, 함양군 백천리 고분군 일대, 하동군의 고소성 일대 등 가야문화유적지를 직접 탐방하는 현장교육으로 진행된다.
곽용환 협의회 의장은 “가야문화권은 520년간 찬란한 역사를 간직하고 우리나라 고대국가의 한 축을 형성했다”면서 “가야문화권 자치단체간 긴밀한 네트워크 구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교류를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jukim@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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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문화권에 소재한 경남·북과 전남·북을 비롯한 전국 15개 시·군 단체장이 함안군청 대회의실에서‘ 제12차 가야문화권 지역발전 시장·군수 협의회’를 개최하고 가야문화권 개발과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정부에 건의키로 했다.
17일 군에 따르면 함안 말이산 고분군 답사와 함안박물관을 방문하여 우수한 아라가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회의는 경남발전연구원 하승철 실장의 ‘함안군 아라가야문화 소개’에 이어 2014년 협의회 회의 개최 및 장소 선정, 2014년 합동 워크샵 및 공무원체육대회 개최 등 논의했다.
특히 가야문화권 개발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자지체간 연계협력 공모사업 신청 등 4개 안건을 상정, 의결했다.
이날 의결된 ‘가야문화권 개발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은 가야문화권의 체계적인 정비와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고 가야문화권 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한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으로 10명 이상의 국회의원 발의로 추진하고 11월중 국회에서 공청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또한 고유한 ‘가야’ 역사·문화와 자원을 활용해 특색 있는 연계네트 워크를 구축하고 가야 역사·문화 실체 규명과 장기적 발전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가칭 ‘가야문화권역 역사·관광벨트 조성사업’을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 지자체연계사업으로 공모를 신청하기로 했다.
가야문화권 지역발전 시장·군수 협의회는 가야문화권의 5개 시·도 15개 시·군(경북 고령군, 성주군, 대구 달성군, 경남 거창군, 산청군, 의령군, 창녕군, 하동군, 함안군, 함양군, 합천군, 전북 남원시, 장수군, 전남 광양시, 순천시)으로서 2005년 6월 구성됐다.
함안군은 지난해 추가 가입, 협의회에서는 2005년 11월 가야문화권 혁신 대 토론회를 시작으로 2008년부터 매년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한편 2010년 12월 가야 문화권 특정지역 지정과 연 2회의 정기 협의회, 합동 워크샵, 체육대회 등을 실시하여‘가야’의 공통된 역사문화 인식을 공유하며 상호 협력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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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국의..함양군..가야국은?..어떤..나라...였나?
왜?...신라,에..병합되어...신라,의...식민지가..돼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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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까지의 가야연맹의 중심은 구야국입니다. 나중에 금관가야/임라가라라고도 불리고, 김해에 위치했습니다. 2세기후반부터 자연스럽게 교역창구를 단일화하여 구야국이 대표하게 되었던 것 같고, 이와 같은 위상의 변화를, 당시 구야국의 지배층의 무덤군이라 짐작되는 김해 대성동 고분군의 유물 수준이랑 봉분규모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번 답사에서는 김해가 넘 멀리 떨어져 있어 돌아볼 수 없네요 -.-;; 이때의 번성했던 구야국 등등 전기 가야연맹, 혹은 구야국 주위의 낙동강하류 지역의 나라들이 번영했던 이유는, 공통적으로, 교역상의 천혜의 요지에 위치해있다는 점, 그리고, 일찍부터 그 일대에서 꽤 풍부한 철산지가 개발되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큰 강의 하구에 위치하면 일단 내륙으로의 교역에 단연 유리하고, 또한 김해일대는 마침 일본과도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면 나라간 교역에 있어서도, 특히 낙랑, 왜, 신라 등 교역대상국과 해운으로 다 연결이 되는 독보적인 장점을 십분 활용할 수 있었던 거죠. 상업으로 축적된 국력과 철기로 대표되는 군사력이 아마 이 시대의 가야연맹의 특징이었겠네요^^;;
이때의 주요 가야연맹국의 구성원으로는, 구야국/반파국(김해), 독로국(부산시 동래구), 미오야마국/임나국(창원시), 고자미동국/고사포국(고성군고성읍), 안야국(함안군가야읍), 접도국/칠포국(함안군칠원면), 미리미동국(밀양시), 반로국/반파국(고령군개진면), 감로국/감문국(김천시 개령면), 주조마국(함양군함양읍), 고순시국(산청군단성면) 정도가 언급되네요^^;;
가야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서는 고분군 발굴에서 나옵니다. 이쯤해서 나중의 공부를 위해 몇 곳의 중요한 고분군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먼저 부산시 동래구에는 복천동고분군, 김해시에는 앞서 언급된 대성동고분군/예안리고분군/구산동고분군/칠산동고분군/양동고분군, 창원시에는 다호리고분군/가음정동고분군, 거제시의 아주동고분군, 고성군의 송학동고분군/내산리고분군, 고령군의 지산동고분군/고아동벽화고분, 함안군의 도항리고분군/말산리고분군, 성주군의 성산동고분군, 의령군의 죽전리고분군/중동리고분군/운곡리고분군, 창녕군의 교동고분군/송현동고분군/계성고분군, 진주시의 옥봉고분군, 산청군의 생초고분군, 합천군의 옥전고분군/삼가고분군/개봉고분군, 함양군의 백천리고분군, 구미시의 낙산동고분군, 상주시의 병풍산고분군/함창오봉산고분군, 경산시의 임당동고분군/조영동고분군, 대구시의 불로동고분군 등등... 헥헥헥 @.@;; 이 중에는 전형적인 가야 지배집단의 고분군임에 틀림없는 곳도 있고, 지역의 수장급 고분군도 있고, 규모나 부장품 등, 꽤 다양한 듯합니다^^;;
당시 동아시아 최강이었던 고구려의 철기병앞에, 군사력으로나 국력으로나 이모저모로 볼 때 가야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렇다할 항전기록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구야국, 가야연맹의 맹주국은 완패했습니다. 그 결과는 전체 가야연맹에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구야국은 치명적인 손실을 입고, 나중에 신라에 병합될 때까지 다시는 전성기의 국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전기의 가야 연맹은 와해되는 수순을 밟게 됩니다. 실제로 대성동고분군의 연대를 살펴보면, 5세기에 이르기까지 화려하고 다양했던 부장품들이, 그 이후 뚜렷하게 소략한 규모와 화려함을 보이며 단절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지배 세력이 힘을 잃고 그 지역을 떠났다는 얘기도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로 인해 파생된 또 한가지 변화, 이 지역의 기술인/지배인 집단이 대규모로 일본 혹은 낙동강 서안 내륙지방으로 이주하면서 그 지역의 문화적/기술적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일본에는 본격적인 고대국가의 형성에 이르게 되는 계기가 된 것도 같고, 유물을 보더라도 이 시기 이후에 집중적으로 가야식 토기 및 부장품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낙동강 서안 쪽에 전수된 문화/기술을 바탕으로 대가야를 중심으로 한 후기 가야 연맹이 발전하게 된 것도 같습니다.
철기문명이 특징인 가야인지라, 후기로 넘어가면서도 주도권을 쥔 나라에게는 어김없이 철광산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령 인근 야로면의 철광산인데, 이 시기부터 갑자기 유물이 다양/화려해지고, 봉분도 거대해지는 대가야 영역의 고령쪽 고분군의 양상을 보면, 어쩌면 철기 문명의 기술인/지배층 일부가 이쪽으로 온 걸까요 ?? 이처럼 구야국을 대신하여 새로운 맹주국이 등장하여 다시 연맹체가 활력을 찾았는데, 이 시기에 주요한 나라는 대략, 과거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남가라국/금관국/금관가야 (김해시), 예나 지금이나 만만찮은 제2인자 안라국/아라가야(함안군가야읍), 탁순국(김해시), 탁기탄국/마수비(창녕군영산면), 산반하국/사팔혜(합천군초계면), 사이기국/이열비(의령군부림면), 임례국(의령군의령읍), 가라국/대가야(고령군고령읍), 다라국(합천군합천읍), 거열(거창군거창읍), 졸마국(함양군함양읍), 걸손국(산청군단성면), 자타국/자탄(진주시), 사물(사천시사천읍), 고차국/고자국(고성군고성읍), 대사국(하동군고전면), 상하다리/달이(여수시,돌산읍), 모루/만해/물혜(광양시광양읍), 사타(순천시), 기문/상기물(임실군임실읍, 장수군변암면), 등등등... 참 많습니다.^^;; 겨우겨우 이름이 남은 나라이름이라도 이렇게 가능하면 많이 외워둡시다!!
고령의 대가야는, 이 일대의 농업생산력과 인근의 야로철광을 배경으로 가야연맹에서 주도권을 행사하였던 같고, 479년에는 중국과 수교(이를테면 보국장군본국왕), 481년에는 신라에 원군을 보내기도 한 사실이 사서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522년부터 562까지 가야연맹은 혼란스러운 시기를 맞이합니다. 대가야와 신라간의 결혼동맹도 여의치 못했고, 고령의 대가야와 함안의 아라가야간의 주도권다툼으로 내부의 결속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었고, 백제의 설득에 백제의 영향권에 들었다가, 554년 관산성전투의 패배로 결정적인 타격을 받아 8년을 못 버티고 대가야는 신라에 복속되었습니다. 이렇게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신라에 복속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대개 네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먼저 내부적으로 각각의 나라간의 견제가 심해 외부의 위협에 대해 일사분란한 대처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 그 때문에 중앙집권적인 통일국가의 등장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 4세기말의 고구려의 정벌, 가야가 주변국가에 대해 가졌던 두가지 강점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은 정세의 변화, 즉 왜국과 신라에서 철생산이 이뤄지던가, 가야를 통하지 않고 교역이 이뤄지기 시작했던가 하는 변화, 이런 저런 이유로 오백년 역사의 가야는 몰락했지만, 아직도 고토에 있는 거대한 고분들이 남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가야의 문화가 결코 미개해서 몰락한 것은 아닙니다. 신라의 삼국통일의 주축이었던 김유신, 강수가 금관가야출신인 것을 봐도 그렇고, 우륵이 대가야 출신인 것을 봐도 짐작할 수 있죠. 당시는 중앙집권적인 체제가 일찍 완성되고 국가의 자원이 효율적으로 집중되었던 나라가 우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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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기념물 제171호 함양백천리고분군 (咸陽白川里古墳群) 경상남도/ 문화재및(문화재청자료기초)
2013/12/20 16:17
http://blog.naver.com/camlhd2/110181806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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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고분군
수량/면적 20,727㎡
지정(등록)일 1997.12.31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산11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함양군
관리자(관리단체) 함양군
상 세 문 의 경상남도 함양군 문화관광과 055-960-5162
함양백천리고분군에 대한 설명입니다.
백천리 척지마을 남계천 옆의 낮은 구릉지대에 분포한 가야시대의 무덤들이다.
발견된 무덤의 수는 무덤 5기와 그 주변에 있는 작은 구덩식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묘) 21기이다. 고분은 둥근 봉분이 남아 있고 묘제는 네모꼴이다. 옆벽은 모두 냇돌로 쌓았고 주실의 동쪽이나 서쪽에 반드시 구덩식돌덧널로 된 부곽을 나란히 배치하여 주실과 부곽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다곽묘이다. 고분 주위에 퍼져 있는 작은 구덩식돌덧널무덤은 크게 파괴되어 완전하게 모습이 남아 있는 예는 하나도 없으며 역시 냇돌로 쌓은 일반적인 형태이다. 유물은 토기류, 철기류, 장신구류 등 200여 점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이 토기이다. 연대는 대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로 추정한다.
함양 백천리무덤들은 지금까지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가야소국 하나가 이 지역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며 이 지방 무덤과 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경상남도기념물제171호함양백천리고분군(咸陽白川里古墳群)
[출처] 경상남도 기념물 제171호 함양백천리고분군 (咸陽白川里古墳群) |작성자 백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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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역사...가야할길...운명의길...진실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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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은..늦었지만..가야시대의역사..진실의역사는..찾아야한다..이것이..함양군의운명이다..진실이기에..
글쓴이 : 오태규 Lastupdate : 2014-02-05 01:19, Regist : 2014-02-05, Hit : 2
함양군의..진실한역사..가야시대의..역사을..찾아야한다...이길이...함양군이..가야할..운명의..길이고..진실한길이다...함양군의...상림?...최치원의역사는?...함양군...가야시대역사의..단편에...불과하다..
이것이...함양군의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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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양군의,역사의진실..가야시대,역사을찾아야한다..늦었지만?..이제라도,진실을찾아야한다!..
번호
374
작성자
오태규
작성일
2014.02.05
조회수
2
함양군의..역사의진실..가야시대,역사을찾아야한다..늦었지만?..진실과..진리의길에는..(역사에는)..늦다는,말이..통하지않는다..함양군은..이제는..잃어버린..진실의역사..가야시대을..연구하고찾아야한다..함양군은..군청안에..가야역사..연구조직팀,을만들어서..함양군의..가야역사..을..처음부터찾아야한다...함양군의.가야시대..무덤군조사..함양군..가야시대문헌조사..함양군..가야유물조사..함양군,가야시대..유물발굴..조사대학(부산대학.인제대학.등등)..가야역사전문가..초빙..조사.연구..상담..자문..하여..함양군의..가야역사..
기초조사을...실시해야할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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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이..함양군의..상림숲과..최치원의..1인의개인의,역사..찾기에..20여년의세월을..허송하는동안...함양...이웃의..군들은..가야시대의..역사의커다란..진실을찾아서..거대한업적을..찾았고..남기게되었고..국가에서도..인정받았다..
함양군이...역사찾기..방향을...잘못..잡은것이다...
함양군도...이제라도..늦었지만..역사의..진실의길은..찾아야된다
이길이...함양군의 운명의길이고..진실의길이고..이제라도..찾아야되고..가야할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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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대형사업 진단] 함안 가야문화권 특정지역 개발
말이산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아라가야’ 영광 재현
기사입력 : 2014-02-04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함안 말이산고분군./함안군 제공/
함안 말이산고분군 전경.
함안 법수 자연생태 늪.
함안군은 지난 2년간의 노력 끝에 지난해 12월 11일 국토교통부로부터 ‘아라가야’가 ‘가야문화권 특정지역’에 추가로 포함됨에 따라 오는 2019년까지 역사문화자원 복원 등 3개 분야 5개 사업에 720억 원 규모의 국책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군은 2010년 12월 24일 대가야권역을 중심으로 지정된 가야문화권 특정지역에 포함되기 위해 기획감사실에 담당부서를 지정하고, 2012년 3월 23일 ‘가야문화권 시장·군수협의회’에도 가입했다.
또 2012년 7월 특정지역 변경 지정안을 수립해 국토교통부와 경상북도, 대구시 등을 10여 차례 방문한 것을 비롯 문화관광부, 농림부, 산림청 등 8개 중앙부처와 수차례 협의를 통해 함안군을 ’가야문화권 특정지역’에 포함하는 성과를 거뒀다.
‘가야문화권 특정지역’ 개발은 지난해 12월 11일 함안 말이산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와 연계 추진해 1500년 전 찬란했던 아라가야 역사문화를 재창조하는 기회로 야심차게 추진할 계획이다.
▲사업 개요
‘가야문화권 특정지역’ 개발 사업은 △역사·문화자원 복원 및 개발정비사업으로 ‘말이산고분군 정비사업’에 439여억 원 △지역관광자원정비 및 조성사업으로 ‘법수 자연생태늪 정비사업’과 ‘여항산 자연체험단지 조성사업’에 139억여 원 △도로·교통 기반시설사업에 ‘여항산 자연체험로 연결도로’와 ‘아라가야 역사도로’ 조성사업에 142억여 원을 투입하는 등(3개 분야 5개 사업에 720억여 원) 가야문화권 특정지역 국책 사업(2019년까지)을 추진한다.
▲사업별 추진 계획
군은 ‘말이산고분군 정비사업’으로 함안박물관을 새롭게 정비한다. 고려시대 산성으로 추정되는 성산산성에서 출토한 각종 목간과 말이산고분군에서 출토된 말갑옷, 미늘쇠 등 우수한 유물을 박물관에 전시하고, 고분군과 성산산성 탐방로 정비와 아직도 미제로 남아 있는 아라가야 왕조 계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가야제국(伽倻諸國)의 역사적 의미를 복원함으로써 아라가야(阿羅伽倻)의 영광을 재현할 계획이다.
‘법수 자연생태늪 조성사업’은 천연기념물인 대평늪과 멸종위기의 가시연꽃 자생지로 유명한 질날늪을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700년 전 아라홍련과 연계해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고, 남강과 둑방길, 팜스테이마을, 현재 추진 중인 창조적 마을만들기사업 등과 연계해 1일 관광·체험지구로 조성해 도시민들에게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하는 등 지역주민들의 소득증대에 이바지하게 된다.
또 인구 110만 명의 창원시와 접하고 있어 도시민 웰빙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는 여항산 일대는 지리적 여건을 활용해 ‘여항산 자연체험단지 조성사업’을 추진해 웰빙과 친환경 캠핑문화지대를 조성하고, 천혜의 자연자원을 활용해 여항산 전체를 자연체험 단지화할 계획이다.
‘여항산 자연체험로 연결도로’ 개설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여항산 둘레길 체험 관광객의 편의를 도모한다. 임도와 겸용으로 사용하는 일부 구간은 산불예방 및 산림보호를 위한 순찰 및 순환도로로 연결 개설해 긴급사항 발생 시 출동 차량들이 7.7km를 돌아나와야 하는 불편함을 개선하는 등 자연자원 보호와 관광객 유치의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게 개발한다.
‘아라가야 역사도로’는 산인면 모곡과 칠원면 유원을 연결하는 도로로 군청 소재지인 가야권역과 역사 문화자원의 칠원권역을 최단 거리로 연결한다. 칠원지역민들의 군청 방문 시 내서읍으로 우회하는 이동 불편을 해소하고, 말이산고분군과 고려동 유적지, 주세붕선생 생가를 비롯 창녕·함안보 등 낙동강 친수공간을 연결하는 역사 탐방 도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와 연계해 ‘함안 말이산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반을 마련한다.
말이산고분군은 가야읍에 있는 아라가야 왕과 지배층의 묘역으로 2011년 7월 29일 사적 제515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지정 면적은 52만5221㎡이며, 남북 길이 2.1km, 동서 길이 최대 510m에 달한다. 남북으로 뻗어있는 말이산 주능선과 서쪽으로 낮아지는 작은 능선을 따라 대형 봉분이 분포돼 있으며, 고분 숫자는 직경 20m 이상의 대형 봉분 50여 기와 함께 현재까지 발굴된 고분 224기를 포함해 1000여 기로 추정되고 있다. 출토된 유물은 아라가야 왕들을 상징하는 각종 무기류, 말 갖춤새, 장신구 등이다.
특히 1992년 마갑총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완전하게 발굴된 말 갑옷(馬甲)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묘사된 것과 같은 말 갖춤새가 완벽한 상태로 출토돼 아라가야가 철을 배경으로 강력한 고대왕국을 형성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군은 독창적이고 가치 있는 가야유산을 경남의 대표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기 위해 2012년부터 ‘가야유적 세계유산 등재 타당성 연구 용역’을 시작으로 세계유산 목록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문화재청 실사를 거쳐 8월 27일 문화재청에서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대상지로 결정한데 이어 12월 11일에는 유네스코 본부에서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키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군은 말이산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최종 등재를 위해 ‘가야문화권 특정지역’ 개발사업과 연계해 추진할 계획이다.
▲향후 추진계획
군은 본격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사업별 관련부서를 중심으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실시설계를 한 후 광특회계 등 국·도비 우선 배정에 노력할 계획이다.
아울러 가야권역에 위치한 5개 시·도 15개 시장·군수로 구성된 ‘가야문화권 시장·군수 협의회’를 활성화하고, 함안군이 가야권지역의 중심적 역할을 할 계획이다.
또 가야시대를 대표하는 함안 말이산고분군을 ‘가야문화권 특정지역’ 개발사업과 연계 추진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입증하고 2016년 목표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계획이다.
▲기대효과
함안군이 ‘가야문화권 특정지역’에 지정됨에 따라 서쪽으로는 대가야 권역과 동쪽으로는 금관가야 권역을 이어주는 동서화합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지역발전 가속화는 물론 정부에서 추진하는 지역균형발전 개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아라가야시대 대표 유적인 ‘함안 말이산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성호 기자 baes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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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제목 | 글쓴이 | 등록일 | 조회 | 실명인증
함양군은..늦었지만..가야시대의역사..진실의역사는..찾아야한다..이것이..함양군의운명이다..진실이기에.. 오태규 14.02.05 2 인증됨
231 하루 2~3시간으로 용돈 두둑히 챙겨가세요 이제욱 14.02.04 5 인증됨
230 함양군의..최치원사당..건립에..대한..의견,과..함양,관광객20만명추가유치..방법제안서. 오태규 14.01.31 26 인증됨
229 함양군역사..와....최치원의,역사...재검토하고..새롭게연구해야한다. 오태규 14.01.29 30 인증됨
228 1월27일,함양군,삼휴대,기념비세우고,물레방아축제에,3성씨,참여시키자.기고문에대하여.. 오태규 14.01.29 34 인증됨
227 100배빠른 영어 공식. 강은미 14.01.08 62 인증됨
226 내병은 내가고치고 내가족은 내가지키자. 강은미 14.01.08 67 인증됨
225 간청소~간청원. 강은미 14.01.08 57 인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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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내용
제목함양군에,이번에,만드는,고운,최치원,사당에..함양고유3성씨,위페,같이모시면..3성씨,후손20만명이..함양관광객,추가된다.
번호
373
작성자
오태규
작성일
2014.01.31
조회수
22
함양군에서..계획하고있는..고운,최치운,사당건립시에..최치운사당에..함양고유3성씨(함양박씨..오씨,여씨),위패을같이모시면..3성씨후손들..20만명이..함양관광객으로..추가된다..
함양의고유..성씨들이기에..타성시들보다도..함양군에..애향심이..지극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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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최치원..의역사을...현대사회에서..재조명,하여보았을때...여러사람의..위패을모시는것이..경제적이고,,효율적이다..그,실예을..보라..|★오박사(태규)전용방
오박사(태규) | 조회 12 |추천 0 |2014.01.31. 09:07 http://cafe.daum.net/ohssipeople/IdhD/679
고운,최치원..의,역사을..현대사회에서..재조명..해보았을때..
함양군은?...어떻게..함양의,역사의전당을 만들어야 하는가?..
함양군도..이제는..함양의역사..을 재조명해보고..역사의식에..잘못이 없는지?..제검토을해야할,때인것으로 본다.
함양군은..신라말엽에..유학자이고..문장가이고..역사의기록에..남아있는..극소수의사람중에..한분이고..한국전국,각지에서..자기향토에서..기록을남기었다고..자랑하는인물..최치원선생에..대하여..다시한번..현대적인..역사의관점에서..조명하고..재검토을해야한다고본다.
그,이유는?..다음과같다.
함양군이..현대의,지금까지..함양군의 절대적인,권위자..공로자..인물..로, 인정하여..함양군의..고유제사에..유일한사람으로..신(神)격으로..모시고..매년 제사을 지내오는데..과연,이것이..역사적으로,볼때에..역사기록으로..볼때에...합리적인가?..옳은일인가?...반성해볼때이다.
최치원은?..신라말엽에..유명한사람이지만..함양군태수로..오래봉직하지도않았고..전국을 유람하며..방랑인,생활을한,사람이였다.
최치원은?..한국,전국에(해운대..정읍태수등)..여러지방에서..자기고향을..거쳐간..사람으로..전국각지에서..유명세..가있다.
사대사상이..사회전체을..지배하던시절..신라..고려..조선시대에는...당나라..명나라..등의..중국에서..벼슬하거나..이름을남기면..그,시대에..일약..유명인이..되었던시절에..살았던..인물이..최치원선생이다.
함양에서는..함양의 상림숲을..만들었다하나?..확실한,역사적..증거도..부족하고..
설형..옛날..함양에서..치수사업으로..상림숲을 만들어..농민들의..농사짓는데..도움을 주었다하나?...함양군..2000년간의,역사에...함양군을..지켜오고..살아온...수많은태수..수많은관료..수백만명의...함양군..농민들..군민들...대다수의..삶과..공적에..비교될수있겠는가?...
더욱이..현대는..민주주의사회로..국민이..주인이고..군(郡)에서는..군민(郡民)이.주인이고..군수(태수)는..군민이..선거로뽑고..군수는..일정기간..봉사하다..떠난다...이런,민주사회에 살고있는...우리가..사대사상의..아부성,잔재을..현재에도..억지로..과대하게..미화시켜..우상화하여..군민(郡民)들의..혈세을..드려야하겠는가?
함양군의..관광발전..을,위해서라면..경제적이고..실용성있는..다른방법도..많을것이다.
최치원의...단독,사당건립만이..관광객이...많이..찾아온다는..보장은없다.
예을들면...전북.정읍의..최치원사당에는..여러분들의..유학자들을..함께..위패을모시고있다.
전국,여러곳의..최치원,사당에는..많은,유학자들..의병들의..비석..위패,등이..함께..모셔져있는것이..현실이다.
(아래,자료참조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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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곳곳의..최치원,사당에..그,지방의..역사의인물들이..위패와..비석으로..
기념물이..모셔져있는것이..현실이고..경제적이기에..
함양군에서도...1000년간의,역사을지닌..함양고유3성씨의..위패와..기념비을..이번에..건립되는..최치원사당에..함께..세워준다면?
함양군은 경제적인방법으로..3성씨의..후손들..전국에..20만명의관광객을..더확보할수있읍니다.
함양박씨..12만명..함양오씨..3만명..함양여씨..3만명..의..함양고유3성씨후손들은?.
근본적으로..함양을..고향으로..생각하고있기에..함양향토에,대한..애정도..깊고..
대단합니다.
그러기에..이번기회에..함양군에서..함양고유3성씨..을.인정해주고...역사증표..기념비,을..만들어준다면..
고유3성씨는..능력과..잠재력..경제력이..무한하기에..관광객..뿐만아니라..함양군의발전에..크게...도움을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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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민들도..이제는..현대의..정서에..어울리게..함양군의..땅과.대지을..사랑하며..땀흘려서..땅을개간하고..일하였던..함양군의..수많은..무명의..군민들..농민들..
함양에서..나라,을위하여..군대에..가고..몸을받쳤던..영령들..
함양의..땅에서..일생을바쳐서..노력하고..헌신하고..봉사하고..대대손손..대을이어서..살아온..함양의..고유의..옛날사람들을..추모하고...기리는것이...
왕이..지배하고..사대사상이..지배하던..봉건사회,가..아닌...현대에 살고있는...
우리시대에..우리가..지금..찾아야하고..추모해야할...역사의진실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함양군에서..최치원의..고유제..만,지내고...최치원의역사관..만...치장하고...만드는것은?...
옳바른,일이아니다..
이제는..함양군에서. 일천년간,이상을..대대로 살아오면서..함양의..땅을개간하며..나라에..충성하고..봉사해온..함양의고유의..3성씨들도..
옛날의...함양의 실존역사의 인물로..새롭게..역사을발굴하고..함양의..고유제..제사에도..모셔야된다..고,사료된다.
함양군은...무엇보다도...잃어버린...함양의,가야역사...500여년간(서기560년이전역사)을 찾는것이..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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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관계로...최치원..이란.. 인물의..역사의진실을...함양군민들...모두가...알고지내어야한다...최치원은?..산라말엽에..유명한,학자이고..문장가이지만..함양군의...유일신(神)..이아니다.
문장을잘하는...문학가였고...관료였고...방랑아였다...함양군을 구한..영웅도아니요...함양군에서..땅일구며...산사람도 아니였다...
함양군에..태수로..잠깐..쉬었다간..몇년간..봉직의..태수였을뿐이다
[답변]함양군의 가야국,역사연구,종합..함양군,이웃군(함안,고령,산청,남원,거창등)..가야국.개발실태..종합글..
- 작성일
- 2014-02-13 09:16:27
- 작성자
- 문화관광과
우리군 홈페이지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귀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붙임파일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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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당
- 행정과 행정담당(비서실) (☎ 055-960-5001)
- 최종수정일
- 2024.07.23 09: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