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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 친일파의 슬픈 도전
- 작성일
- 2013-08-30 10:38:01
- 작성자
- 박선호
함양군 친일파의 슬픈 도전
아래 사항은 『광복절에 생각나는 함양의 친일파』에 대한 함양군의 답변이다.
................................................................................................................................................
【함양군의 답변】
「함양군사에 대한 깊은 관심에 감사드립니다.귀하께서 질문하신 건에 대해서는 수차례에 걸쳐 우리 군과 함양문화원에서 답변을 한 사항입니다.우리 함양군사는 친일 역사의식에서 집필이 된 사항이 아님을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
.................................................................................................................................................
함양군은 위와 같이 답변을 하였는데 마치 질문의 요지인 함양군사(咸陽郡史)에 지적에 대한 답변이나 일본인들의 우월감과 자존심과 일본인들의 자부심과 역사의식을 고양시켜 주고 한편으로는 조선인들에 대한 열등감을 조장하고 조선인들의 조상은 못나고도 못난 전투만 하면 지고 도망이나 다니는 형편없는 조상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심으려는 식민사관의 지속적인 전파를 노린 함양문화원의 의도적인 함양군사의 회수에 대한 답변은 한 번도 없었는데도 마치 〈정상적인 답변을 한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또한 『함양군사가 친일 역사의식에서 집필이 된 사항이 아니라고 다시 한 번 알려 드린다. 』라고 답변을 함으로서 친일이라는 것이 어디에서 연유를 하는지 전혀 백치상태다.
친일이란?
이름이나 관상에서 친일파라고 쓰여 있거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완용이가 친일거두로서 만고의 역적으로 인정이 되고 기록이 되는 이유는 이름이 이완용이기 때문도 아니요 이마에 친일파라고 쓰여 있기 때문도 아니다. 단지 그의 행동이 일본인들을 위하는 행위를 하였기 때문이다. 함양군사의 집필진도 그들의 관상에이나 이름에 친일파라고 쓰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행한 행동이 친일행동이기 때문에 그들은 친일파가 되는 것이다.
닭장 속에서 닭들이 함께 있을 때는 오골계인지 일반 닭인지를 구별하기는 어렵다. 그들이 지난 수 십 년간 각 분야에서 식민사관의 전파와 친일행위를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들어나지 않은 것은 친일파임을 들어 내놓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번 함양군사(咸陽郡史)를 집필하면서 식민사관이나 친일적인 그들의 일상적이고 평상적인 생각이 실질적인 행동으로 함양군사에 그대로 반영이 됨으로서 그들의 식민사관과 친일행동이 들통이 났기 때문이다. 마치 오골계인지 아닌지 잡아봐야 알 수 있는 것처럼 함양군사에서 그들이 식민사관에 오염된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며 친일파임이 들어 났다.
함양군수실에서 답변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친일파들의 친일행위를 옹호하고 조작된 일본들의 기록을 그대로 전파를 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면 당신 또한 친일파가 아닐 수가 없다. 대한민국의 공무원이 국민들이 지급하는 국가의 녹을 먹으면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거나 친일파들의 옹호하고 식민사관의 전파를 지속하면 당신도 그들의 영향을 그대로 받은 식민사관에 오염된 사람이며 바로 친일파 일당임에 틀림이 없고 국가 공무원으로서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저하시켜 함양군민의 입장에서 당신의 존재는 필요가 없다.
당연히 알아야 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난 역사에 대해서 잘 몰라서라고 하면서 하루하루의 쾌락적인 의식주 해결에는 갈급하나 문화의식이나 역사에 대한 연구는 하지 않고 남이 해주기만을 기다리며, 지난번에 지원했는데 무슨 지원이냐고 하는 오만함에 찌든 사람들은 모두가 식민사관에 오염된 사람들이다. 누구든지 모든 것에 완벽할 수는 없다. 따라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면 연구를 하겠다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도와주는 것이 리더요 행정가이며 진정한 애국자다.
일본인들이 인정하는 황석산성 전투 참전왜군 7만 여명을 인정하지 않고 임진전쟁이 발발한 1592년부터 전국에서도 가장 치열한 의병전쟁을 벌인 김면과 정인홍 등을 비롯한 서부경남의 저항의지와 의병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지휘관이 되고 그들의 다수가 참전하고 이에 동의한 거창현, 안음현, 함양현에서 자원하여 입성한 7,000여명이 넘는 조선인 수천 여명은 모두 무시하고 왜놈들은 한명도 죽지않았다고 일본인들이 조작하여 놓은 27,000명이 참전했다고 끝까지 그대로 전파를 하려고 시도하고, 기록에도 없는 황석산성 입성인원 3,500명이라고 조작하는 행위, 오지도 않은 우기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가 황석산성 전투에 왔다고 황석산성 전투에 대한 실상을 파악하는 데에 혼돈을 조장하려는 일본의 의도를 그대로 전파하는 행위 이것이 바로 친일행위다. 아직도 학계에서 인정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일본인들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전파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전한다. 일본인들이 써 놓은 내용을 그대로 전하는 임진전란사 또한 학계에서 인정한 것이 아니다.
2012년도에 출판한 함양군사보다도 15년이나 앞서서 1997년도에 출판한 거창군사는 일본들이 식민사관으로 조작하여 놓은 그런 기록은 없다. 그러면서도 제시하는 기록은 반드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거창군사의 집필진이 전주성에서 북진한 27,000명을 몰라서 기록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서울대학교에서 1967년도에 출판한 임진전란사(壬辰戰亂史)라는 책이 없어서 일까, 아니면 글자를 읽을 줄을 몰라서였을까?
21세기에 일본의 식민사관의 전파를 시도한 함양군사를 기록한 함양군의 친일파들은 좀 더 신중해야 했었고 이에 대한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
『집필위원장 전 함양문화원장 김성진, 집필위원 김윤수, 김찬수, 김흥식, 박영일, 소재우, 양정렬, 유성기, 임채갑, 정문상, 정상기, 정수상, 홍동초 등 이상 13명』은 반드시 답해야 할 것이다.
식민사관에 찌들은 사람이나 친일파들은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이나 일반국민들에게 자신의 역사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민족적인 열등감으로 병들게 하고 자신의 조상들은 왜놈들 보다도 훨씬 못난 조상들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조장하는 행위가 지속될 것임으로 그들은 더 이상 책을 만들어서도 안 되고 번역을 해서도 안 된다. 문화원의 행사든 어느 곳이든지 공식적인 식장에의 등장을 스스로 자제를 해야 할 것이고 공개적인 연설을 하거나 하는 의도적인 행위를 해서는 더욱 안 될 것이다. 또한 그들 친일파들을 의도적으로 등장을 시켜 식민사관의 전파를 시도하려 한다면 그 사람 또한 식민사관에 찌던 친일파가 될 것이다.
황석산성 전투는 「1597년 8월의 정유재침략전쟁 중 황석산성전투에 우군대장(右軍大將) 모리데루모도(毛利輝元) 이하 75,300명이 참전을 했고 8월14일 도착하여 18일까지 5일간의 전투를 했고 8일간이나 결려서 8월25일에 전주성에 입성하여 북진을 하는데 황석산성을 공격했던 왜병 우군(右軍)은 우군대장 3만명의 모리데루모도(毛利輝元)와 13,300명의 조오소가베 모도지가(長曾我部元親) 부대는 궤멸되어 사라지고 황석산성에서 사전 정찰 중 부상을 당하여 전투를 할 수가 없었던 가등청정 10,000명, 나베시마니오시게 12,000명, 구로다나가마사 5,000명 등 27,000명만이 북진을 한다. 75,300- 27,000명 = 나머지 48,300은 전사를 당했거나 부상자로서 더 이상의 전투행위를 지속할 수가 없을 정도로 황석산성에서 완벽하게 궤멸되어 사라졌다.
이것은 우리 조선 사람들의 기록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기록이다. 시마쓰요시히로(島津義弘)의 종군승인 멘고렌조보(面高連長防)의 「고려일기(高麗日記)」에서 증명하고 있는 내용이며 황석산성에 7만 여명이 완벽하게 포위공격했다는 이야기는 황석산성 서문에서 조종도 이하 함양사람들과 싸운 「나베시마(鍋島)가문의 기록」에서 증명이 되는 이야기다.
어떻게 황석산성과 같은 작은 성에 7만 여명이 들어가서 전투를 할 수가 있을까? 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황석산성은 1,190m 높이의 사방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험준한 산 정상에 만들어진 둘레가 2.9km의 산성으로 황석산 전체의 둘레는 오늘날의 안의면, 서하면, 서상면, 거창군의 마리면, 위천면, 북상면을 연하는 거대한 산으로 둘러싸여 접근을 용이하지 허락하지 않은 천하의 요새다. 권율장군이 3,000여명으로 왜군 3만 여명과 싸워 승리했다는 행주산성보다도 규모에 있어서는 비교를 할 수가 없는 큰 산이며 왜군 10만 여명이 조선인 김시민 이하 6만 여명을 참살했다는 진주성보다도 규모면에서 훨씬 더 크고 웅장한 성이다.
군사학을 전공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 화왕산성이나 진주성이나 행주산성보다는 적의 공격을 저지하는 방어전투에 있어서 황석산성이 훨씬 유리한 전술적인 가치가 있는 곳으로 판단이 되며 당시의 체찰사 이원익이나 안음현인 정유영이나 곽준, 유명개 등이 참으로 현명하게 효과적으로 잘 이용한 곳이다.
황석산성 전투는 정유재침략을 하는 그 순간에 급조하여 만들어 지고 이루어지는 전투가 아니다. 1592년 임진전쟁의 발발과 함께 전국에서도 가장 저항의지가 강했던 서부경남의 저항의지가 그대로 반영이 된 곳이고 함양현의 조종도 현감이 부임하기 몇 개월 전인 1596년 3월에 이미 체찰사 이원익이 황석산성을 방문하여 곽준과 정유영 등과 함께 왜군의 침략에 대비하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더 이상 함양군 문화과는 일본인들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전파하려는 함양의 친일파들의 의도를 옹호하거나 역사를 바로잡는데 앞장 서야 할 대한민국 국가의 공무원이 친일행위를 지속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일본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전파하려는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고서는 함양군사(咸陽郡史)를 이렇게 만들 수는 없다. 따라서 함양군사는 반드시 회수 되어져야 한다.
황석역사연구소장 박선호
아래 사항은 『광복절에 생각나는 함양의 친일파』에 대한 함양군의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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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의 답변】
「함양군사에 대한 깊은 관심에 감사드립니다.귀하께서 질문하신 건에 대해서는 수차례에 걸쳐 우리 군과 함양문화원에서 답변을 한 사항입니다.우리 함양군사는 친일 역사의식에서 집필이 된 사항이 아님을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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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은 위와 같이 답변을 하였는데 마치 질문의 요지인 함양군사(咸陽郡史)에 지적에 대한 답변이나 일본인들의 우월감과 자존심과 일본인들의 자부심과 역사의식을 고양시켜 주고 한편으로는 조선인들에 대한 열등감을 조장하고 조선인들의 조상은 못나고도 못난 전투만 하면 지고 도망이나 다니는 형편없는 조상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심으려는 식민사관의 지속적인 전파를 노린 함양문화원의 의도적인 함양군사의 회수에 대한 답변은 한 번도 없었는데도 마치 〈정상적인 답변을 한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또한 『함양군사가 친일 역사의식에서 집필이 된 사항이 아니라고 다시 한 번 알려 드린다. 』라고 답변을 함으로서 친일이라는 것이 어디에서 연유를 하는지 전혀 백치상태다.
친일이란?
이름이나 관상에서 친일파라고 쓰여 있거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완용이가 친일거두로서 만고의 역적으로 인정이 되고 기록이 되는 이유는 이름이 이완용이기 때문도 아니요 이마에 친일파라고 쓰여 있기 때문도 아니다. 단지 그의 행동이 일본인들을 위하는 행위를 하였기 때문이다. 함양군사의 집필진도 그들의 관상에이나 이름에 친일파라고 쓰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행한 행동이 친일행동이기 때문에 그들은 친일파가 되는 것이다.
닭장 속에서 닭들이 함께 있을 때는 오골계인지 일반 닭인지를 구별하기는 어렵다. 그들이 지난 수 십 년간 각 분야에서 식민사관의 전파와 친일행위를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들어나지 않은 것은 친일파임을 들어 내놓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번 함양군사(咸陽郡史)를 집필하면서 식민사관이나 친일적인 그들의 일상적이고 평상적인 생각이 실질적인 행동으로 함양군사에 그대로 반영이 됨으로서 그들의 식민사관과 친일행동이 들통이 났기 때문이다. 마치 오골계인지 아닌지 잡아봐야 알 수 있는 것처럼 함양군사에서 그들이 식민사관에 오염된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며 친일파임이 들어 났다.
함양군수실에서 답변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친일파들의 친일행위를 옹호하고 조작된 일본들의 기록을 그대로 전파를 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면 당신 또한 친일파가 아닐 수가 없다. 대한민국의 공무원이 국민들이 지급하는 국가의 녹을 먹으면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거나 친일파들의 옹호하고 식민사관의 전파를 지속하면 당신도 그들의 영향을 그대로 받은 식민사관에 오염된 사람이며 바로 친일파 일당임에 틀림이 없고 국가 공무원으로서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저하시켜 함양군민의 입장에서 당신의 존재는 필요가 없다.
당연히 알아야 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난 역사에 대해서 잘 몰라서라고 하면서 하루하루의 쾌락적인 의식주 해결에는 갈급하나 문화의식이나 역사에 대한 연구는 하지 않고 남이 해주기만을 기다리며, 지난번에 지원했는데 무슨 지원이냐고 하는 오만함에 찌든 사람들은 모두가 식민사관에 오염된 사람들이다. 누구든지 모든 것에 완벽할 수는 없다. 따라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면 연구를 하겠다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도와주는 것이 리더요 행정가이며 진정한 애국자다.
일본인들이 인정하는 황석산성 전투 참전왜군 7만 여명을 인정하지 않고 임진전쟁이 발발한 1592년부터 전국에서도 가장 치열한 의병전쟁을 벌인 김면과 정인홍 등을 비롯한 서부경남의 저항의지와 의병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지휘관이 되고 그들의 다수가 참전하고 이에 동의한 거창현, 안음현, 함양현에서 자원하여 입성한 7,000여명이 넘는 조선인 수천 여명은 모두 무시하고 왜놈들은 한명도 죽지않았다고 일본인들이 조작하여 놓은 27,000명이 참전했다고 끝까지 그대로 전파를 하려고 시도하고, 기록에도 없는 황석산성 입성인원 3,500명이라고 조작하는 행위, 오지도 않은 우기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가 황석산성 전투에 왔다고 황석산성 전투에 대한 실상을 파악하는 데에 혼돈을 조장하려는 일본의 의도를 그대로 전파하는 행위 이것이 바로 친일행위다. 아직도 학계에서 인정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일본인들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전파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전한다. 일본인들이 써 놓은 내용을 그대로 전하는 임진전란사 또한 학계에서 인정한 것이 아니다.
2012년도에 출판한 함양군사보다도 15년이나 앞서서 1997년도에 출판한 거창군사는 일본들이 식민사관으로 조작하여 놓은 그런 기록은 없다. 그러면서도 제시하는 기록은 반드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거창군사의 집필진이 전주성에서 북진한 27,000명을 몰라서 기록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서울대학교에서 1967년도에 출판한 임진전란사(壬辰戰亂史)라는 책이 없어서 일까, 아니면 글자를 읽을 줄을 몰라서였을까?
21세기에 일본의 식민사관의 전파를 시도한 함양군사를 기록한 함양군의 친일파들은 좀 더 신중해야 했었고 이에 대한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
『집필위원장 전 함양문화원장 김성진, 집필위원 김윤수, 김찬수, 김흥식, 박영일, 소재우, 양정렬, 유성기, 임채갑, 정문상, 정상기, 정수상, 홍동초 등 이상 13명』은 반드시 답해야 할 것이다.
식민사관에 찌들은 사람이나 친일파들은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이나 일반국민들에게 자신의 역사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민족적인 열등감으로 병들게 하고 자신의 조상들은 왜놈들 보다도 훨씬 못난 조상들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조장하는 행위가 지속될 것임으로 그들은 더 이상 책을 만들어서도 안 되고 번역을 해서도 안 된다. 문화원의 행사든 어느 곳이든지 공식적인 식장에의 등장을 스스로 자제를 해야 할 것이고 공개적인 연설을 하거나 하는 의도적인 행위를 해서는 더욱 안 될 것이다. 또한 그들 친일파들을 의도적으로 등장을 시켜 식민사관의 전파를 시도하려 한다면 그 사람 또한 식민사관에 찌던 친일파가 될 것이다.
황석산성 전투는 「1597년 8월의 정유재침략전쟁 중 황석산성전투에 우군대장(右軍大將) 모리데루모도(毛利輝元) 이하 75,300명이 참전을 했고 8월14일 도착하여 18일까지 5일간의 전투를 했고 8일간이나 결려서 8월25일에 전주성에 입성하여 북진을 하는데 황석산성을 공격했던 왜병 우군(右軍)은 우군대장 3만명의 모리데루모도(毛利輝元)와 13,300명의 조오소가베 모도지가(長曾我部元親) 부대는 궤멸되어 사라지고 황석산성에서 사전 정찰 중 부상을 당하여 전투를 할 수가 없었던 가등청정 10,000명, 나베시마니오시게 12,000명, 구로다나가마사 5,000명 등 27,000명만이 북진을 한다. 75,300- 27,000명 = 나머지 48,300은 전사를 당했거나 부상자로서 더 이상의 전투행위를 지속할 수가 없을 정도로 황석산성에서 완벽하게 궤멸되어 사라졌다.
이것은 우리 조선 사람들의 기록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기록이다. 시마쓰요시히로(島津義弘)의 종군승인 멘고렌조보(面高連長防)의 「고려일기(高麗日記)」에서 증명하고 있는 내용이며 황석산성에 7만 여명이 완벽하게 포위공격했다는 이야기는 황석산성 서문에서 조종도 이하 함양사람들과 싸운 「나베시마(鍋島)가문의 기록」에서 증명이 되는 이야기다.
어떻게 황석산성과 같은 작은 성에 7만 여명이 들어가서 전투를 할 수가 있을까? 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황석산성은 1,190m 높이의 사방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험준한 산 정상에 만들어진 둘레가 2.9km의 산성으로 황석산 전체의 둘레는 오늘날의 안의면, 서하면, 서상면, 거창군의 마리면, 위천면, 북상면을 연하는 거대한 산으로 둘러싸여 접근을 용이하지 허락하지 않은 천하의 요새다. 권율장군이 3,000여명으로 왜군 3만 여명과 싸워 승리했다는 행주산성보다도 규모에 있어서는 비교를 할 수가 없는 큰 산이며 왜군 10만 여명이 조선인 김시민 이하 6만 여명을 참살했다는 진주성보다도 규모면에서 훨씬 더 크고 웅장한 성이다.
군사학을 전공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 화왕산성이나 진주성이나 행주산성보다는 적의 공격을 저지하는 방어전투에 있어서 황석산성이 훨씬 유리한 전술적인 가치가 있는 곳으로 판단이 되며 당시의 체찰사 이원익이나 안음현인 정유영이나 곽준, 유명개 등이 참으로 현명하게 효과적으로 잘 이용한 곳이다.
황석산성 전투는 정유재침략을 하는 그 순간에 급조하여 만들어 지고 이루어지는 전투가 아니다. 1592년 임진전쟁의 발발과 함께 전국에서도 가장 저항의지가 강했던 서부경남의 저항의지가 그대로 반영이 된 곳이고 함양현의 조종도 현감이 부임하기 몇 개월 전인 1596년 3월에 이미 체찰사 이원익이 황석산성을 방문하여 곽준과 정유영 등과 함께 왜군의 침략에 대비하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더 이상 함양군 문화과는 일본인들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전파하려는 함양의 친일파들의 의도를 옹호하거나 역사를 바로잡는데 앞장 서야 할 대한민국 국가의 공무원이 친일행위를 지속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일본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전파하려는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고서는 함양군사(咸陽郡史)를 이렇게 만들 수는 없다. 따라서 함양군사는 반드시 회수 되어져야 한다.
황석역사연구소장 박선호
[답변]함양군 친일파의 슬픈 도전
- 작성일
- 2013-09-10 13:21:22
- 작성자
- 문화관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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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당
- 행정과 행정담당(비서실) (☎ 055-960-5001)
- 최종수정일
- 2024.07.22 17:5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