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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언제쯤? 황석산성 대첩비를 세울까?
- 작성일
- 2012-08-26 20:23:47
- 작성자
- 박선호
황석산성에 누가 언제쯤 대첩비를 세울까?
지난해 추석 황석산성 추모제가 끝난후 어느기사에 " 400여 년전 안음현, 거창현, 함양현, 사람들 3,500여명이 왜군 27,000명을 맞아 전투를 하였다고 선조실록에 근거가 있다."라고 한 기사를 본적이 있다. 나는 아연 실색했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그런 역사적인 사실이 밝혀졌구나!
10여 년간 밤을 지세우면서도 찾고 또 찾았건만 발견하지 못했던 근거, 보고 싶었던 역사적 사실을 함양군청의 한 공무원이 자랑스럽게 발표를 한 것을 보고 감개가 무량하였다.
반가운 마음에 확실한 근거를 요구를 하였으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답변은 듣지를 못했다. 지금도 담당 공무원은 그 근거를 찾고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만약 아니라고 이미 판단이 되었다면 지면을 통한 공개적인 사과를 해야 하고 수정을 해야 할 것이다.
풍신수길 다음에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성장한다.” 라고 했다.
인간의 성장은 그러한 실수의 과정을 거쳐서 오늘 보다는 내일, 내일 보다는 그 훗날 보다 더 크게, 더 인간답게 성숙하여 갈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성숙하지 못한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숨기려 한다거나 일시적으로 그 순간을 모면하려 하고 피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성장이 아니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공무원으로서의 그 자리는 그의 것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며 아무런 반성도 없이 그자리를 유지하려 한다것은 그것은 국가적인 낭비로 군민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차라리 군민 앞에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밝히는 것이 보다 더 먼 미래의 국가와 자신을 위한 성장이 될 것이다.
나는 지금도 "잃어버린 역사! 황석산성 전투"에서 사라진 영혼을 모시는 황암사를 자주 방문한다. 그 앞마당에 기록된 돌판을 본다. 그리고 왜군이 27,000명이 왔다든가 3,500명이라든가, 하는 잘못된 기록들이 언제쯤 사라지고 역사적 진실이 바른대로 기록이 될 것인가를 생각한다.
남원 만인의총은 남원시도 아닌 전라북도에서 관련공무원들이 조국에 목숨을 바친 그날의 영혼들을 어떻게 하면 그분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더 보탬이 될까, 더 고귀하게 모셔질까, 라고 얼마나 많은 고심과 노력을 하고 있는데, 임진전쟁을 종료시킨 결정적인 황석산성 전투, 풍신수길에게 화병의 단계를 넘어서 신장과 간장이 오그라지는 고황병(膏肓病)으로 죽게 한 황석산성 전투가 언제쯤 그런 대우를 받을 것인가?
함양군의 군수가 몇 번이나 바뀌어야만 하고 관련 국회의원은 몇번이나 다녀가야만 관심을 가진 사람이 나타날 것인지? 담당공무원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누가? 어떤 사람이 담당을 해야만 황석산성에 황석산성 대첩비가 세워질 것인지?
풍신수길의 목적이 조선8도의 분할과 왜군들의 목표가 전라도 땅으로 고정된 당시에 조정에서도 황석산성의 중요성을 절감을 하였다.
그래서
도원수 권율장군도, 체찰사 이원익도 현장방문을 통하여 축성을 독려 하였고
각 현마다 왜놈들이 지나는 길목을 청소하는 청야담당 공무원을 두었고
주민들은 살기 위해서는 산으로도 골짜기로도 피난을 갈 수도 없었고 악귀같이 날뛰는 왜놈들은 피하기 위해서는 산성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군무장 유명개년보에 “자원하여 온 사람들로 성안이 가득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만인의 총”이라고 하는 남원성은 둘레가 2.57km이며 황석산성은 2.9km이다. 수용능력에 있어서도 만인의 총보다 더 크다.
또한 당시에 현감인 조종도, 곽준, 군무장 유명개는 “비리를 용납하지 않고 의리를 중시하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 라는 이상사회건설을 목표로 하는 남명조식의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왜놈보다도 자신의 비리가 탈로 날까봐서 도망을 가는 기타 주변의 여러 현감들과는 전혀 다른 관민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는 한 마음으로 일치단결하여 모두가 자진하여 성으로 들어갔음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황석산성에는 7,000명 이상이 입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코 황석산성 전투가 우연하게 75,300명을 궤멸시킬 수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모두가 준비된 것이다. 유명개의 세 아들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전쟁이 끝나면 돌려드리겠습니다. 화살촉을 만들고 창을 만들려고 하니 유기그릇 좀 빌려 달라고 집집마다 호소하며 직접 만들고 준비한 전투입니다. 지금처럼 정부의 조달본부가 있어서 창, 칼, 활, 화살을 마음대로 만들거나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120만 5천석의 영지를 가진 히로시마 (광도성) 성주 모리데루모토 우군대장, 조소가베 모도지가, 가도오 기요마사. 구로다 나가마사, 나베시마 나오시게 등의 정규군을 궤멸시킨다는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심지어 소설 “대망”을 쓴 요시카와 에이지... 공무원도 아닌 소설가조차도 왜놈 정규군이 궤멸된 치욕적인 역사적인 사건인 황석산성 전투를 감추려고 일개 무장에 지나지 않는 모리히데모토(毛利秀元)를 우군대장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당시 왜군의 부대장이 되기 위해서는 수십 만석의 자신의 영지가 있어 부대원과 군량미를 스스로 조달할 수가 있어야 부대장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조건이 하나도 없는 모리히데모토가 우군의 대장이라니? 한낱 모리데루모토의 양자에 지나지 않은 어린것이!
우리 조선인들은 그런 그들의 치부를 밝혀야 합니다. 잃어버린 역사를 바로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민족혼을 찾고 조선인의 자부심을 찾고 목숨 바친 조상들의 영혼들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진정으로 그러한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 ? 내가 정상적으로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칠백의총이나 만인의총처럼 황석산성 추모제를 준비하는 담당자들이 지치지 않고 자부심을 가지고 행사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함양군수와 군의원님들과 담당자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지원은 하고 있는지 ?
한사람의 잘못된 역사관에 자신의 운명을 걸고 나 자신을 속이고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고 무관심하여 행사준비를 어렵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진실을 밝히고 조상을 모시는 일에 사적인 감정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개입되지는 않았는지 모두가 생각하는 시간이 주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누가? 언제쯤 황석산성에 대첩비를 세울 수가 있을 것인지?
단순한 황석산성 정비계획이 아닌 만인의총, 칠백의총, 이순신 장군의 성역처럼 성지로서
국가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날은 언제쯤 일지 ?
함양군에 묻고 싶습니다.
황석산성이 위치한 당사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어느누가 주인이라고 앞장서서 움직일까?
황석역사연구소
지난해 추석 황석산성 추모제가 끝난후 어느기사에 " 400여 년전 안음현, 거창현, 함양현, 사람들 3,500여명이 왜군 27,000명을 맞아 전투를 하였다고 선조실록에 근거가 있다."라고 한 기사를 본적이 있다. 나는 아연 실색했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그런 역사적인 사실이 밝혀졌구나!
10여 년간 밤을 지세우면서도 찾고 또 찾았건만 발견하지 못했던 근거, 보고 싶었던 역사적 사실을 함양군청의 한 공무원이 자랑스럽게 발표를 한 것을 보고 감개가 무량하였다.
반가운 마음에 확실한 근거를 요구를 하였으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답변은 듣지를 못했다. 지금도 담당 공무원은 그 근거를 찾고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만약 아니라고 이미 판단이 되었다면 지면을 통한 공개적인 사과를 해야 하고 수정을 해야 할 것이다.
풍신수길 다음에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성장한다.” 라고 했다.
인간의 성장은 그러한 실수의 과정을 거쳐서 오늘 보다는 내일, 내일 보다는 그 훗날 보다 더 크게, 더 인간답게 성숙하여 갈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성숙하지 못한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숨기려 한다거나 일시적으로 그 순간을 모면하려 하고 피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성장이 아니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공무원으로서의 그 자리는 그의 것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며 아무런 반성도 없이 그자리를 유지하려 한다것은 그것은 국가적인 낭비로 군민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차라리 군민 앞에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밝히는 것이 보다 더 먼 미래의 국가와 자신을 위한 성장이 될 것이다.
나는 지금도 "잃어버린 역사! 황석산성 전투"에서 사라진 영혼을 모시는 황암사를 자주 방문한다. 그 앞마당에 기록된 돌판을 본다. 그리고 왜군이 27,000명이 왔다든가 3,500명이라든가, 하는 잘못된 기록들이 언제쯤 사라지고 역사적 진실이 바른대로 기록이 될 것인가를 생각한다.
남원 만인의총은 남원시도 아닌 전라북도에서 관련공무원들이 조국에 목숨을 바친 그날의 영혼들을 어떻게 하면 그분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더 보탬이 될까, 더 고귀하게 모셔질까, 라고 얼마나 많은 고심과 노력을 하고 있는데, 임진전쟁을 종료시킨 결정적인 황석산성 전투, 풍신수길에게 화병의 단계를 넘어서 신장과 간장이 오그라지는 고황병(膏肓病)으로 죽게 한 황석산성 전투가 언제쯤 그런 대우를 받을 것인가?
함양군의 군수가 몇 번이나 바뀌어야만 하고 관련 국회의원은 몇번이나 다녀가야만 관심을 가진 사람이 나타날 것인지? 담당공무원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누가? 어떤 사람이 담당을 해야만 황석산성에 황석산성 대첩비가 세워질 것인지?
풍신수길의 목적이 조선8도의 분할과 왜군들의 목표가 전라도 땅으로 고정된 당시에 조정에서도 황석산성의 중요성을 절감을 하였다.
그래서
도원수 권율장군도, 체찰사 이원익도 현장방문을 통하여 축성을 독려 하였고
각 현마다 왜놈들이 지나는 길목을 청소하는 청야담당 공무원을 두었고
주민들은 살기 위해서는 산으로도 골짜기로도 피난을 갈 수도 없었고 악귀같이 날뛰는 왜놈들은 피하기 위해서는 산성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군무장 유명개년보에 “자원하여 온 사람들로 성안이 가득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만인의 총”이라고 하는 남원성은 둘레가 2.57km이며 황석산성은 2.9km이다. 수용능력에 있어서도 만인의 총보다 더 크다.
또한 당시에 현감인 조종도, 곽준, 군무장 유명개는 “비리를 용납하지 않고 의리를 중시하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 라는 이상사회건설을 목표로 하는 남명조식의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왜놈보다도 자신의 비리가 탈로 날까봐서 도망을 가는 기타 주변의 여러 현감들과는 전혀 다른 관민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는 한 마음으로 일치단결하여 모두가 자진하여 성으로 들어갔음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황석산성에는 7,000명 이상이 입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코 황석산성 전투가 우연하게 75,300명을 궤멸시킬 수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모두가 준비된 것이다. 유명개의 세 아들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전쟁이 끝나면 돌려드리겠습니다. 화살촉을 만들고 창을 만들려고 하니 유기그릇 좀 빌려 달라고 집집마다 호소하며 직접 만들고 준비한 전투입니다. 지금처럼 정부의 조달본부가 있어서 창, 칼, 활, 화살을 마음대로 만들거나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120만 5천석의 영지를 가진 히로시마 (광도성) 성주 모리데루모토 우군대장, 조소가베 모도지가, 가도오 기요마사. 구로다 나가마사, 나베시마 나오시게 등의 정규군을 궤멸시킨다는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심지어 소설 “대망”을 쓴 요시카와 에이지... 공무원도 아닌 소설가조차도 왜놈 정규군이 궤멸된 치욕적인 역사적인 사건인 황석산성 전투를 감추려고 일개 무장에 지나지 않는 모리히데모토(毛利秀元)를 우군대장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당시 왜군의 부대장이 되기 위해서는 수십 만석의 자신의 영지가 있어 부대원과 군량미를 스스로 조달할 수가 있어야 부대장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조건이 하나도 없는 모리히데모토가 우군의 대장이라니? 한낱 모리데루모토의 양자에 지나지 않은 어린것이!
우리 조선인들은 그런 그들의 치부를 밝혀야 합니다. 잃어버린 역사를 바로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민족혼을 찾고 조선인의 자부심을 찾고 목숨 바친 조상들의 영혼들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진정으로 그러한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 ? 내가 정상적으로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칠백의총이나 만인의총처럼 황석산성 추모제를 준비하는 담당자들이 지치지 않고 자부심을 가지고 행사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함양군수와 군의원님들과 담당자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지원은 하고 있는지 ?
한사람의 잘못된 역사관에 자신의 운명을 걸고 나 자신을 속이고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고 무관심하여 행사준비를 어렵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진실을 밝히고 조상을 모시는 일에 사적인 감정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개입되지는 않았는지 모두가 생각하는 시간이 주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누가? 언제쯤 황석산성에 대첩비를 세울 수가 있을 것인지?
단순한 황석산성 정비계획이 아닌 만인의총, 칠백의총, 이순신 장군의 성역처럼 성지로서
국가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날은 언제쯤 일지 ?
함양군에 묻고 싶습니다.
황석산성이 위치한 당사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어느누가 주인이라고 앞장서서 움직일까?
황석역사연구소
[답변]누가? 언제쯤? 황석산성 대첩비를 세울까?
- 작성일
- 2012-09-04 17:54:08
- 작성자
- 문화관광과
○ 최근 독도문제와 위안부 문제등 과거 역사속에서 반일 감정이 고조되는 시점에 애국하는 마음으로 정유재란 사적지인 황석산성 대첩비 건립에 대한 고견을 주신 박선호 선생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 첫번째 질문하신 왜적에게 순국당한 안의, 거창, 함양 사람들이 3,500여명이라는 [선조실록]의 근거성 문제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임란당시의 지족당 모집에 2~3천명 이라는 기록과 관군 500여명이 순국하였다는 옛 기록등에 유추한 당시의 보도자료라 사료됩니다.
따라서 2011년 당시의 보도자료(함양인터넷뉴스 2011.9.15.자)를 해량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두번째 질문하신 황석산성 대첩비 건립문제는 2003년도에 함양군과 문화재청, 황석산성추모제위원회에서 호국정신 함양과 정유재란 당시 순국하신 민∙관∙군의 원혼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충효정신을 자손만대에 널리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황암사』를 중건하고, 그 역사적 사실을 적은 사적비를 건립하였습니다. 현재로서는 대첩비 건립계획을 추진하지 않고 있습니다.
○ 세번째는 임란의 전사기록이 역사적 사료로 많이 남아있지 않아 전국의 사학과 교수님들과 문화재 위원님들께 부탁하여 황석산성전투기록에 대한 정확한 고증과 전사발굴에 계속하여 함양군이 노력하겠습니다.
○ 끝으로 선생님께서 집필하신 『황석산성 전투와 임진대전쟁』등의 소중한 책자를 그동안 몇차례 구입하여 역사학자들과 관심있는 군민들에게 배포하여 서로가 지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임진왜란사 관련 서적을 지속적으로 연찬하여 박선호 선생님과 함께 공동관심사항으로 인식하고, 함양군의 역사를 바르게 정립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항상 남다른 고향사랑을 가져 주시는 선생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첫번째 질문하신 왜적에게 순국당한 안의, 거창, 함양 사람들이 3,500여명이라는 [선조실록]의 근거성 문제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임란당시의 지족당 모집에 2~3천명 이라는 기록과 관군 500여명이 순국하였다는 옛 기록등에 유추한 당시의 보도자료라 사료됩니다.
따라서 2011년 당시의 보도자료(함양인터넷뉴스 2011.9.15.자)를 해량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두번째 질문하신 황석산성 대첩비 건립문제는 2003년도에 함양군과 문화재청, 황석산성추모제위원회에서 호국정신 함양과 정유재란 당시 순국하신 민∙관∙군의 원혼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충효정신을 자손만대에 널리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황암사』를 중건하고, 그 역사적 사실을 적은 사적비를 건립하였습니다. 현재로서는 대첩비 건립계획을 추진하지 않고 있습니다.
○ 세번째는 임란의 전사기록이 역사적 사료로 많이 남아있지 않아 전국의 사학과 교수님들과 문화재 위원님들께 부탁하여 황석산성전투기록에 대한 정확한 고증과 전사발굴에 계속하여 함양군이 노력하겠습니다.
○ 끝으로 선생님께서 집필하신 『황석산성 전투와 임진대전쟁』등의 소중한 책자를 그동안 몇차례 구입하여 역사학자들과 관심있는 군민들에게 배포하여 서로가 지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임진왜란사 관련 서적을 지속적으로 연찬하여 박선호 선생님과 함께 공동관심사항으로 인식하고, 함양군의 역사를 바르게 정립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항상 남다른 고향사랑을 가져 주시는 선생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담당
- 행정과 행정담당(비서실) (☎ 055-960-5001)
- 최종수정일
- 2024.07.22 17:5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