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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역사! 황석산성전투의 진실 , 이대로 방치하시렵니까?
- 작성일
- 2011-12-10 12:35:55
- 작성자
- 박선호
최완식 군수님!
안녕하십니까?
황석역사연구소장 박선호 입니다.
참으로 우연한 기회에 황석산성에 대한 지금까지 알고 있는 내용과는 전혀 다른 기록을 보고는 크게 놀람과 동시에 이것은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이제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그것이 책으로 엮어져서 단행본으로 발간된 것이 생각만 해도 참으로 대견스럽습니다.
역사연구란 처음부터 돈은 들어가지만 결과물을 내어 놓아도 돈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역사연구를 기피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부유한 사람이 아닌 보통사람의 능력으로 자료를 조사하고 현지답사를 해야 하고 하는 모든 것들은 개인적인 사생활을 희생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고 연구자 개인의 생활능력에 따라서 소요되는 세월은 한없이 길어지기도 합니다.
동창생들과 안의면장님의 의욕적인 활동이 없었다면 황석산성의 진실을 밝히는 10여년 연구도 결국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제 황석산성은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새로운 사실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기란 한참의 세월이 필요할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속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원고를 보고는 그대로 받아 들였지만 또 어떤 분은 받아드릴 수 없는 달라진 상황을 두고 머릿속에서 불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참전왜군 27,000명이 아닌 75,300명, 5일간의 긴 전투, 수만 명의 왜군 전사자. 조선인 7,000여 명 산성 입성, 성주 백사림의 영웅적인 전투 등등..
검증은 필자의 몫이 아닙니다. 능력이 있는 관계자나 선배제현님들께서 하여 주시면 더더욱 고맙겠습니다. 정(正)이 있으면 반드시 반(反)이 있듯이 그리고 합(合)이 성립된다면 변증법적인 사회발전의 단계를 거쳐서 완벽한 새로운 대안이 나오듯이 그런 발전의 단계가 형성되기를 기대합니다.
때로는 사정을 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러나 역사적 진실을 연구하면서 개인적인 애로사항과 친분을 강조한다면 진실이 오염되고 더렵혀지며 수천의 영혼들이 비참해질까봐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연구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역설할 수 있지만 그 어떤 고난이 있어도 비굴하게 사정을 하거나 매달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비록 고통스럽지만 나는 당신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라는 말로 황석산성의 진실을 밝히자고 절대로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황석산성은 너무나 오랫동안 잃어버린 역사가 되어 고통과 억울함으로 지내 왔는데 더 이상 비참해 진다는 것은 용서될 수 없는 일이기에 개인의 영욕을 위하여 황석산성의 진실을 밝히는 연구과정이 왜곡되어서는 안 되고 진실을 밝히는 일에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그들의 자발적인 지원과 참여만이 잃어버린 역사! 억울함의 대명사! 황석산성이 빛을 내게 될 것입니다.
황석산성의 진실은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일이지만 황석산성의 진실을 국민과 군민에게 알리는 일은 거창, 함양, 합천, 산청 군수님과 경남도지사님의 몫입니다.
아직도 일부의 사람들은 황석산성에서 당시의 안음현인 서상면, 서하면. 안의면, 마리면, 북상면, 위천면 사람들만 황석산성에서 싸운 것으로 이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함양사람뿐만이 아니고 거창사람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함양군에서는 마천면, 백전면, 유림면, 휴천면, 병곡면, 지곡면, 수동면, 함양읍 사람들, 당시의 함양군의 사람들이 조종도 전 함양군수의 인솔로 황석산성에 입성을 했습니다.
그리고 거창현 사람들도 당시의 현감 한형이 와병으로 입성하지 못하여 당시의 거창좌수 유명개가 직접 인솔하여 입성을 했습니다. 그래서 거창현감 한형의 부인도 황석산성에서 순절했습니다. 거창읍사람, 가조사람, 가북사람, 웅양사람, 남하사람, 남상사람, 주상사람, 고제사람 등 1천5백여명이 넘는 인원이 황석산성에 입성하여 싸웠습니다.
따라서 황석산성 산하에 있는 안음은 안음사람들만의 싸움터가 아니고 왜군 7만5천여 명과 서부경남의 일반백성들 총계 약 10 만여 명이 계곡과 골짜기를 메웠고 피는 강물이 되어 흐르며 목을 베고 코를 베어 염라대왕도 외면할 지옥의 난장판이 된 10만 명의 전장이며 안음, 함양, 거창 3개현이 주축이 되고 합천, 삼가, 초계, 산음 4개현의 피난민들이 함께 어우러진 서부경남 모두가 왜군 75,300명을 상대로 벌인 잘 싸운 「죽고도 산 한판승의 싸움터」입니다. 바다에서는 영웅적인 이순신장군의 해전이 있었고 육전에서는 곽준, 조종도, 백사림, 유명개와 7,000여명이 순국한 영웅적인 민초들의 황석산성 전투가 있었습니다.
『황석산성 전투와 임진대전쟁』의 연구보고를 마치면서 이제 남은 것은 당시에 황석산성에서 산화했던 분들을 찾아 기록하여 정리하고 그들의 업적을 기리는 일과 국민에게 새로운 진실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저는 저의 작은 노력의 결과물인 역사서『黃石山城 戰鬪와 임진대전쟁』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배제현님들께서 보실 때 부족한 것은 채워주시고 잘못된 것은 고쳐서 황석산성이 한민족의 역사에서 살아 숨쉬는 완벽한 하나의 정사가 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큰 생각과 가치를 더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당부 드립니다.
함양군수님!
그리고 서부경남의 선배제현 여러분!
『임진전란사』에 기록된 27,000명이 아니고 7만5천300명중 48,300명이 죽거나 부상당한 전투, 16일 하룻밤 전투가 아닌 5일간의 긴 전투, 조선인 500명만 죽은 그런 이상한 전투가 아닌 7,000여 명의 백성이 75,300여명의 왜군을 궤멸시킨 전투, 조선팔도의 분할을 막고 7년 임진대전쟁을 종식시킨 황석산성전투! 이대로 묻혀질 수 없는 황석산성의 진실을 세상에 널리 알려줍시다.
역사는 인식하는 자의 역사입니다. 객관적인 진실이 밝혀진 엄청난 민족적 시련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알고도 축소 왜곡 조작하려거나 등한시 한다면 그는 왜군의 후손이거나 배달민족이 아닌 오랑캐나 중국의 소수민족인지도 모릅니다. 어느 지방자치 단체장은 역사연구를 의도적으로 방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관련공무원은 지금도 근거없는 내용을 가지고 황석산성 전투에서 산화한 7,000여명 조상들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군수님!
역사를 모른다고 귀찮다고 지금 가르치지 않으면 자라나는 세대는 내가 누구인지를 모릅니다. 억지로라도 가르쳐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자는 민족의 반역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진실 된 우리의 역사를 성심으로 가르친다면 세월이 흐른 먼 훗날 이시대의 나는 가지만 우리는 이 땅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안음현, 함양현, 거창현, 삼가현, 합천현, 초게현, 산음현 등
7개현의 심심산골 이름없는 7,000여 백성들이 7년 임진전쟁을 종료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울산성 전투에 동원된 황석산성을 공격한 왜병 우군은 현저헤게 줄어 들었고 그들은 더 이상 공격군으로서의 기능을 완벽하게 상실하였습니다. 견딜수 없었던 왜군은 1598년 3월과 5월에에 조기철군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성질이 괴팍했던 풍신수길은 5월달에 화병이나서 7월달에 죽었습니다. 8월에 왜군들이 모두철군을 함으로서 조선과 왜국의 7년 임진대전쟁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역사적인 정체성에 근거하지 않는 일시적이고 전시효과적인 그 어떤 정책도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 받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가 될때 조상과 역사앞에 진솔해지고 어떠한 강력한 정치권력도 역사적인 정체성에 바탕할 때 정당성과 정통성을 부여받게 될것입니다.
최완식 군수님 !
임진전쟁을 종료시킨 결정적인 전투!
한산대첩, 명랑대첩, 행주산성 대첩보다 절대로 못하지 않는 전투
잔악한 코베기가 시작된 전투!
잃어버린 역사!
황석산성 전투의 진실을 이대로 방치를 하시겠습니까?
2011. 12. 10일
황석역사연구소 박선호 드림
안녕하십니까?
황석역사연구소장 박선호 입니다.
참으로 우연한 기회에 황석산성에 대한 지금까지 알고 있는 내용과는 전혀 다른 기록을 보고는 크게 놀람과 동시에 이것은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이제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그것이 책으로 엮어져서 단행본으로 발간된 것이 생각만 해도 참으로 대견스럽습니다.
역사연구란 처음부터 돈은 들어가지만 결과물을 내어 놓아도 돈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역사연구를 기피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부유한 사람이 아닌 보통사람의 능력으로 자료를 조사하고 현지답사를 해야 하고 하는 모든 것들은 개인적인 사생활을 희생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고 연구자 개인의 생활능력에 따라서 소요되는 세월은 한없이 길어지기도 합니다.
동창생들과 안의면장님의 의욕적인 활동이 없었다면 황석산성의 진실을 밝히는 10여년 연구도 결국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제 황석산성은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새로운 사실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기란 한참의 세월이 필요할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속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원고를 보고는 그대로 받아 들였지만 또 어떤 분은 받아드릴 수 없는 달라진 상황을 두고 머릿속에서 불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참전왜군 27,000명이 아닌 75,300명, 5일간의 긴 전투, 수만 명의 왜군 전사자. 조선인 7,000여 명 산성 입성, 성주 백사림의 영웅적인 전투 등등..
검증은 필자의 몫이 아닙니다. 능력이 있는 관계자나 선배제현님들께서 하여 주시면 더더욱 고맙겠습니다. 정(正)이 있으면 반드시 반(反)이 있듯이 그리고 합(合)이 성립된다면 변증법적인 사회발전의 단계를 거쳐서 완벽한 새로운 대안이 나오듯이 그런 발전의 단계가 형성되기를 기대합니다.
때로는 사정을 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러나 역사적 진실을 연구하면서 개인적인 애로사항과 친분을 강조한다면 진실이 오염되고 더렵혀지며 수천의 영혼들이 비참해질까봐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연구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역설할 수 있지만 그 어떤 고난이 있어도 비굴하게 사정을 하거나 매달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비록 고통스럽지만 나는 당신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라는 말로 황석산성의 진실을 밝히자고 절대로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황석산성은 너무나 오랫동안 잃어버린 역사가 되어 고통과 억울함으로 지내 왔는데 더 이상 비참해 진다는 것은 용서될 수 없는 일이기에 개인의 영욕을 위하여 황석산성의 진실을 밝히는 연구과정이 왜곡되어서는 안 되고 진실을 밝히는 일에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그들의 자발적인 지원과 참여만이 잃어버린 역사! 억울함의 대명사! 황석산성이 빛을 내게 될 것입니다.
황석산성의 진실은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일이지만 황석산성의 진실을 국민과 군민에게 알리는 일은 거창, 함양, 합천, 산청 군수님과 경남도지사님의 몫입니다.
아직도 일부의 사람들은 황석산성에서 당시의 안음현인 서상면, 서하면. 안의면, 마리면, 북상면, 위천면 사람들만 황석산성에서 싸운 것으로 이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함양사람뿐만이 아니고 거창사람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함양군에서는 마천면, 백전면, 유림면, 휴천면, 병곡면, 지곡면, 수동면, 함양읍 사람들, 당시의 함양군의 사람들이 조종도 전 함양군수의 인솔로 황석산성에 입성을 했습니다.
그리고 거창현 사람들도 당시의 현감 한형이 와병으로 입성하지 못하여 당시의 거창좌수 유명개가 직접 인솔하여 입성을 했습니다. 그래서 거창현감 한형의 부인도 황석산성에서 순절했습니다. 거창읍사람, 가조사람, 가북사람, 웅양사람, 남하사람, 남상사람, 주상사람, 고제사람 등 1천5백여명이 넘는 인원이 황석산성에 입성하여 싸웠습니다.
따라서 황석산성 산하에 있는 안음은 안음사람들만의 싸움터가 아니고 왜군 7만5천여 명과 서부경남의 일반백성들 총계 약 10 만여 명이 계곡과 골짜기를 메웠고 피는 강물이 되어 흐르며 목을 베고 코를 베어 염라대왕도 외면할 지옥의 난장판이 된 10만 명의 전장이며 안음, 함양, 거창 3개현이 주축이 되고 합천, 삼가, 초계, 산음 4개현의 피난민들이 함께 어우러진 서부경남 모두가 왜군 75,300명을 상대로 벌인 잘 싸운 「죽고도 산 한판승의 싸움터」입니다. 바다에서는 영웅적인 이순신장군의 해전이 있었고 육전에서는 곽준, 조종도, 백사림, 유명개와 7,000여명이 순국한 영웅적인 민초들의 황석산성 전투가 있었습니다.
『황석산성 전투와 임진대전쟁』의 연구보고를 마치면서 이제 남은 것은 당시에 황석산성에서 산화했던 분들을 찾아 기록하여 정리하고 그들의 업적을 기리는 일과 국민에게 새로운 진실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저는 저의 작은 노력의 결과물인 역사서『黃石山城 戰鬪와 임진대전쟁』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배제현님들께서 보실 때 부족한 것은 채워주시고 잘못된 것은 고쳐서 황석산성이 한민족의 역사에서 살아 숨쉬는 완벽한 하나의 정사가 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큰 생각과 가치를 더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당부 드립니다.
함양군수님!
그리고 서부경남의 선배제현 여러분!
『임진전란사』에 기록된 27,000명이 아니고 7만5천300명중 48,300명이 죽거나 부상당한 전투, 16일 하룻밤 전투가 아닌 5일간의 긴 전투, 조선인 500명만 죽은 그런 이상한 전투가 아닌 7,000여 명의 백성이 75,300여명의 왜군을 궤멸시킨 전투, 조선팔도의 분할을 막고 7년 임진대전쟁을 종식시킨 황석산성전투! 이대로 묻혀질 수 없는 황석산성의 진실을 세상에 널리 알려줍시다.
역사는 인식하는 자의 역사입니다. 객관적인 진실이 밝혀진 엄청난 민족적 시련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알고도 축소 왜곡 조작하려거나 등한시 한다면 그는 왜군의 후손이거나 배달민족이 아닌 오랑캐나 중국의 소수민족인지도 모릅니다. 어느 지방자치 단체장은 역사연구를 의도적으로 방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관련공무원은 지금도 근거없는 내용을 가지고 황석산성 전투에서 산화한 7,000여명 조상들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군수님!
역사를 모른다고 귀찮다고 지금 가르치지 않으면 자라나는 세대는 내가 누구인지를 모릅니다. 억지로라도 가르쳐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자는 민족의 반역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진실 된 우리의 역사를 성심으로 가르친다면 세월이 흐른 먼 훗날 이시대의 나는 가지만 우리는 이 땅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안음현, 함양현, 거창현, 삼가현, 합천현, 초게현, 산음현 등
7개현의 심심산골 이름없는 7,000여 백성들이 7년 임진전쟁을 종료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울산성 전투에 동원된 황석산성을 공격한 왜병 우군은 현저헤게 줄어 들었고 그들은 더 이상 공격군으로서의 기능을 완벽하게 상실하였습니다. 견딜수 없었던 왜군은 1598년 3월과 5월에에 조기철군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성질이 괴팍했던 풍신수길은 5월달에 화병이나서 7월달에 죽었습니다. 8월에 왜군들이 모두철군을 함으로서 조선과 왜국의 7년 임진대전쟁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역사적인 정체성에 근거하지 않는 일시적이고 전시효과적인 그 어떤 정책도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 받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가 될때 조상과 역사앞에 진솔해지고 어떠한 강력한 정치권력도 역사적인 정체성에 바탕할 때 정당성과 정통성을 부여받게 될것입니다.
최완식 군수님 !
임진전쟁을 종료시킨 결정적인 전투!
한산대첩, 명랑대첩, 행주산성 대첩보다 절대로 못하지 않는 전투
잔악한 코베기가 시작된 전투!
잃어버린 역사!
황석산성 전투의 진실을 이대로 방치를 하시겠습니까?
2011. 12. 10일
황석역사연구소 박선호 드림
- 담당
- 행정과 행정담당(비서실) (☎ 055-960-5001)
- 최종수정일
- 2024.07.03 13:1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