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현황/지명유래

수동면 상백리 상백

수동면 상백리 상백 상세 내용 마을명, 가구,인구, 이장, 새마을지도자, 부녀회장, 주요농산물을 정리한 표
마을명 수동면 상백리 상백
가구 65 가구
인구 104 명
이장 이병권
새마을지도자 박양호
부녀회장 이창선
주요 농특산품 미곡, 사과, 배 양파, 딸기, 밤 등

상백전경

상백전경


상백(웃잣뜰) 유래

"유래 : 윗잣들이라고 부르는 상백(上栢)마을은 사근에서 안의로 통하는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수동면과 안의면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조선 말기에는 백토면으로 되었다가 수동면으로 병합되면서 상백리로 격하되었던 것이다.
윗잣들이란 고유 명칭에 따라 상백리라 부르게 되었으며 금호(중생원)와 고실 등 세 개의 자연부락으로 마을을 이루고 있다.
마을이 형성된 것은 처음 함양의 토박이 성씨인 여씨가 터를 잡아 살게 되었다. 조선 세종때 신창 표씨가 한양에서 이거해 왔고, 조선 선조때 김녕김씨가 삼가에서 이거해 왔다. 그 후 효종때 양영대군의 후손인 이씨가 이거하여 살아오면서 백석촌(栢石村)이라 불리워지기도 하였다. 그 뒤 초계정씨 밀양박씨 동래정씨 등이 들어오면서 큰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상백리 고분군은 상백리 앞 도로와 남계천 사이에 폭 400m, 길이 약 2,000m의 들 가운데 있었다. 1972년 농지 개량 사업으로 경지 정리를 하다가 발견된 삼국시대 말기의 고분으로 추정된다.
1972년 경지 정리 당시 동아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에 의하여 발굴된 보고서에 의하면, 면적 6.6㎡ 당 1기꼴로 수 천기의 고분이 밀집하여 있었다고 한다.
부장품이나 장신구는 없었으나, 단갑(短甲 )과 괘값(掛甲)이 발견되어 갑주(甲胄)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당시 출토된 토기 중, 의례 용기는 거의 없었으며 실용적인 용기가 대부분이었다.이와 같은 토기류 발견은 삼국시대 말기 이 지방에서 자주 일어났던 나제(羅.濟) 양군의 잦은 충돌을 단적으로 증명해 주고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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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결연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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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연업체(단체)명 화영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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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수동면 총무담당 (☎ 055-960-8660)
최종수정일
2023.10.05 17: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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