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소개
개암 강익
介庵 姜翼
1523 ~ 1567
서원 창건 주역 강익
강익(1523 ~ 1567)은 함양 수동면 효우촌(효리마을)에서 태어났다. 15세에 학문을 시작하여 당곡 정희보와 남명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수신(修身)의 중요성을 깨달은 강익은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도심(道心) 회복을 위해 숙야재(夙夜齋)와 양진재(養眞齋)를 짓고 위기지학에 진력했다. 1552년 성리학적 공간배치를 토대로 남계서원을 창건한 후, 1564년 건물마다 편액했다. 강학공간인 강당을 '밝아지면 정성스러워 진다'는 명성(明誠)으로 편액하여 남계서원의 지향 이념을 제시했다. 1566년(명종 21년) 영남 유생 33인의 소두(선봉)가 되어 정여창의 원통한 일을 풀었다. 남계서원에 배향(1689년, 숙종 15)되었다. 묘소는 함양군 휴천면 목현리 산 27번지에 있다.
남계서원 창건과정
년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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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3년 | 개암 강익 출생(함양군 수동면 효리) |
1552년 | 개암 강익 창건 시작(개암 30세, 군수 서구연의 적극적인 후원) - 창건 동력 『부보록』 (군수 및 유림 등 기부내역이 기록된 문서) |
1553년 | 서원 창건 중단(개암 31세, 1553 ~ 1558년, 6년간) |
1559년 | 군수 윤확 부임, 공사 재개(개암37세) - 강당 및 담장 완성, 묘우를 강당 동쪽에 지음 |
1561년 | 서원 완성(개암 39세) 문헌공 위판 봉안 - 개암 남계서원 초대 원장 취임 |
1564년 | 군수 김우홍 부임(개암 42세) - 동·서재(齋) 지음 |
1564년 | 개암, 건물에 명명하여 편액(扁額)함(개암 42세) |
1566년 | 남계서원(灆溪書院) 사액(개암 44세) |
1567년 | 개암 강익 별세(개암 45세) |
1597년 | 정유재란 소실 |
1603년 | 나촌(羅村, 구라마을)으로 터를 옮겨 지음 |
1612년 | 옛터인 현재의 위치에 다시 지음 |
1677년 | 서당 서편에 동계 정온 배향 |
1689년 | 사당 동편에 개암 강익 배향 |
2009년 | 사적 제499호 지정 |
2019년 |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
2023년 5월 6일 | 개암 강익 탄신 500주년 기념행사(탄신제ㅡ초헌관 최종수성균관장/은행나무 기념식수/학술발표,/묘소참배) 거행 |
개암강익 문집
강익 개암문집
개암문집
개암문집 목판
종류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16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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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기록유산 |
수량/면적 | 186매 |
지정일(등록일) | 1972.12.29 |
소재지 | 경상남도 함양군 |
소유자(소유단체) | 함양 남계서원 |